글. 아톰비트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10부작이 넘어가는 드라마는 너무 길게 느껴질 때가 많다. 만약 주중 야근이라도 당첨(?)되었다간 잘 보고 있었던 드라마의 흐름까지 끊어질 수 있다. 재미의 흐름을 계속 이어가면서도 짧게 감상할 수 있는 드라마는 없을까? 이 같은 바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짧지만, 부담없이 정주행할 수 있는 미니시리즈 (혹은 단막극, TV 영화 포함) 드라마들을 모아봤다. 추리소설의 거장인 ‘애거사 크리스티’를 시작으로, 넷플릭스 인기작, 누구나 알고 있는 명탐정, 그리고 미처 알지 못하고 넘어갔던 충격적인 사건들까지, 출퇴근길 투자만으로도 확실히 재미를 뽑을 수 있는 해외 미니시리즈 6편을 소개한다.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 (Why Didn’t They Ask Evans?)

이미지: 브릿박스

애거사 크리스티는 그 명성답게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나일강의 죽음], [ABC 살인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 수많은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로 나왔다. 올해는 3부작 미니시리즈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가 제작되어, 드라마 팬들의 눈길을 모았다. 골프 연습을 하던 도중, 벼랑 밑에서 빈사 상태로 죽어가던 한 남자가 주인공 보비 존스에게 남긴 한마디,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 이 말로 인해 미궁에 빠진 사건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 애거사 크리스티 하면 떠오르는 미스 마플이나 에르퀼 푸아로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사람이 사건을 풀어간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영상화된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설을 판매한 작가의 원작에다, 여기에 영국을 대표하는 양대 공영 TV에 해당되는 BBC와 iTV가 공동 투자로 론칭한 OTT 브릿박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만큼 캐스팅이 화려하다. 미드 [하우스]의 휴 로리, 영국을 대표하는 여배우 엠마 톰슨, 그리고 [미드소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윌 폴터가 가세하며 극의 무게감을 더한다.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를 비롯, BBC에서 제작한 ‘애거사 크리스티 시리즈’는 대부분 2-3부로 구성되었기에 짧은 시간에 추리의 재미를 느끼고 싶은 분이라면 괜찮은 선택이 될 듯하다. (캐치온)

퀸스 갬빗 (The Queen’s Gambit)

이미지: 넷플릭스

7부작 [퀸스 갬빗]은 월터 데비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떠오르는 신예 안야 테일러조이’ 매력을 고스란히 담아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보육원으로 오게 된 엘리자베스 하먼(안야 테일러조이)가 건물 관리인 미스터 샤이벨에게 체스를 배운 뒤, 여성 체스 기사로 성장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를 그린다. ​정적이고 복잡한 체스라는 주제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퀸스 갬빗]은 흡입력 있는 이야기로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중 최다 스트리밍 기록을 세웠다. 여기에는 주인공 베스를 연기하는 안야 테일러조이의 존재감이 컸다. [23 아이덴티티], [뉴 뮤턴트]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안야는 이 드라마에서 폭발적인 연기력을 선사하며,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한 것은 물론, 골든 글로브, 미국배우조합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정상급 배우로 발돋움했다. (넷플릭스)

셜록 (Sherlock)

이미지: BBC

[셜록]은 짧지만 빅재미를 자아내는 드라마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시즌당 3부작으로 이뤄져 보기에 부담 없고, 그 짧은 러닝타임마저 시간순삭급 재미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사실 셜록은 이미 여러 차례 영상화가 되었기에 더 이상 만들 이야기가 있을까 걱정이 컸다. 하지만 [셜록]의 제작자인 마크 게이티스는 그간 드라마, 영화화된 ‘셜록 홈즈’는 “너무 경건하고 느리다”라는 비판을 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원작의 분위기를 최대한 망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깃든 작품을 제작하기로 한다. 그 결과 원작의 향수는 물론 개성까지 넘치는 [셜록]이 탄생했고, 극 중 셜록 홈스와 존 왓슨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틴 프리먼은 글로벌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두 배우는 지금까지 만든 그 어떤 셜록 홈즈 시리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케미를 선보이며 수많은 팬을 이 작품에 입덕하게 만들었다. 시즌제 드라마의 특성상 시즌이 거듭 될수록 예전보다 신선함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많은 팬은 후속 시즌을 기다리는 중이다. 제작진은 2022~23년 사이에 시즌 5를 방영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두 주인공의 너무나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언제 만나게 될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쿠팡플레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체르노빌 (Chernobyl)

이미지: HBO

HBO에서 제작된 5부작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룬 작품이다. 드라마는 원전 폭발이 있었던 2년 후, 1988년 4월 26일 모스크바에서 시작된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당시, 현장 지휘를 맡았던 발레리 레가소프의 의미심장한 고백을 기점으로, 당시 소련이었던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당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대로 흐르지만, 드라마 명가 HBO다운 놀라운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픽션과 다큐의 경계를 넘나든다. 미국 최고 TV 드라마를 선정하는 에미상 19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가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과 각본상 등 10개 부문을 휩쓸었다. 드라마의 완벽한 완성도는 물론, 이야기가 전하는 묵직한 메시지가 짧은 러닝 타임이 끝나고 나서도 긴 여운에 빠지게 한다. (웨이브)

퀴즈 (Quiz)

이미지: iTV

3부작 미니시리즈 [퀴즈]는 영국의 유명 퀴즈쇼 프로그램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과 관련된 드라마다. 퀴즈쇼를 통해 인생 역전을 이룬 누군가의 이야기냐고?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유명 퀴즈쇼 이면의 추악한 음모와 스캔들을 가감 없이 다룬 실화 고발의 성격이 더 강하다. 드라마는 거액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 출연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드라마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나지만, [퀴즈]를 보고 있으면 정말 이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 작품은 퀴즈쇼에서 속임수를 썼다는 제작진의 주장과 자신은 그저 정답을 맞췄다는 찰스 잉그램의 대립을 빠른 전개 속도와 박진감 넘치는 연출로 그려내 많은 호평을 받았다. 덕분에 방영 7일 만에 900만의 시청자를 동원하며, 2020년 iTV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잉그램 부부는 20년 가까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데, 드라마까지 큰 인기를 끌면서 변호사가 유죄 판결에 항소할 계획이라고 한다. 드라마 속 퀴즈쇼 진행자로 나온 마이클 쉰을 비롯, [석세션]에서 물오른 연기력을 선보인 매튜 맥퍼딘 등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많이 등장해 극의 재미를 더한다. (왓챠)

키시베 로한은 움직이지 않는다 (Thus Spoke Kishibe Rohan)

이미지: NHK

인기만화 『죠죠의 기묘한 이야기』의 스핀오프 드라마 [키시베 로한은 움직이지 않는다] 역시 부담 없는 구성(2시즌 총 6부작) 속에 정주행을 그만둘 수 없는 재미를 건넨다. 주인공 키시베 로한이 스탠드라는 특수능력 ‘헤븐스 도어’를 이용해 기묘한 사건들을 해결해 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의 기괴한 능력 (타인의 얼굴을 책처럼 보는) 자체가 워낙 만화적인 과장이 넘치기에 실사화가 되면 위화감이 상당할 것이라는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키시베 로한을 맡은 배우 타카하시 잇세이의 능숙한 연기력과 원작 설정을 최대한 현실감 있게 묘사한 구성으로, 실사화의 약점을 벗어나며 많은 호평을 끌어냈다. 여기에 기묘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미스터리, 판타지, 호러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여 원작의 묘미도 잃지 않는다. 짧으면서도 독특한 드라마를 찾고 있는 분이라면 분명 나름의 취향을 저격하는 작품이 될 듯하다. 드라마는 현재 국내 정식 서비스되지 않지만, 동명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