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델루나]로 판타지 드라마의 성공 가능성을 맛본 홍정은과 홍미란 작가, 이른바 ‘홍자매’가 본격 판타지 드라마로 안방을 공략했다. [환혼]은 방영 전부터 여러모로 화제였다. 1, 2부로 나누어 방영된다는 점도 특이했고, 주연 배우가 첫 촬영을 마치고 하차한 일도 있었다. 설왕설래가 계속되는 가운데 [환혼]이 시작됐고, 집중력 있는 이야기 전개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미지: tvN

[환혼]의 배경인 가상의 나라는 큰 호수를 옆에 끼고 있어 대호국이라 불린다. 이 세계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물기, 즉 수기가 있으며, 이를 움직이는 능력을 가진 자들을 술사라 칭한다. 술사들이 행하는 술법 중 몸과 혼을 바꿀 수 있는 것을 ‘환혼’이라 하는데, 그 위험성 때문에 금지되어 있으며 환혼술을 행한 자는 큰 처벌을 받는다. 대호국의 천하제일 살수 ‘낙수'(고윤정)는 큰 부상을 입고 도망가다 마지막 기운을 짜내 환혼술을 펼치고, 그의 혼은 앞이 보이지 않는 무덕(정소민)의 몸에 들어간다. 무덕은 기루에서 이른바 대호국 천하사계 중 하나인 장씨 가문 장욱(이재욱)과 마주친다. 장욱은 무덕이 낙수의 환혼임을 단번에 알아보고, 그의 정체를 숨겨주고 보호하는 대신 자신의 스승이 되어 술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한다. 무덕은 생존을 위해 장욱과의 거래에 응하고 그가 술사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환혼]은 실존 역사보단 수많은 무협 소설과 영화,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설정이 줄을 잇고, 수기와 환혼, 탄수법 같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 등장한다. 옷은 옛 한복에 바탕하지만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은 현대적이며, 사극에서 나올 법한 말투와 현대극의 대사가 모두 나온다. 등장인물은 많고 관계는 복잡해서, 누가 누구인지 익히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 가상 국가가 배경인 판타지인데 국악 스타일로 편곡된 K-팝이 등장하며 웃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를 낯설게 만드는 용어, 장치, 시각효과에 익숙해지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서사와 감정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인연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환혼]의 핵심은 장욱과 무덕, 두 사람의 서사와 관계다. 장욱의 서사는 평범한 소년이 천하제일 영웅이 되는 과정이다. 장욱은 대호국 최고 술사 장강(주상욱)의 아들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에 의해 술법을 익힐 능력을 차단당했고, 장강을 두려워한 대호국의 어떤 술사도 이를 풀어주지 않는다.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자랐기에, 장욱은 술사가 되기 위해선 살인자도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할 만큼 절박하다. 그의 절박함은 환혼한 낙수, 무덕의 마음을 움직였고, 무덕은 기지를 발휘해 장욱의 차단된 능력을 되살리고 술사의 기본을 가르친다. 반면 낙수/무덕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성취를 이뤄낸 누군가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낙수는 아버지를 죽인 4대 가문에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지만, 무덕으로 환혼한 후 이전에 몰랐던 사실을 알면서 혼란을 느낀다. 또한 무덕이 사실은 4대 가문 중 진씨 가의 실종된 후계자 보연이며, 그가 왜 진씨 가문 후계자가 아니라 시골 마을 출신 하인으로 살아야 했는지가 또 다른 미스터리로 등장한다. 둘의 이야기는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운명’을 찾아가는 과정이란 점에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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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복잡한 과거사를 품은 장욱과 무덕은 처음엔 서로를 실컷 이용할 수 있는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생사를 함께 넘나들며 둘은 시한부 사제 관계 이상으로 나아간다.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면, 술사가 되는 법을 배우려면 등의 이유로 옆에 붙어 있으려 하고, 서로를 위해서라면 죽음을 각오한다. 낙수와 인연이 있는 서율(황민현), 무덕을 신경 쓰는 고원(신승호), 장욱에게 반한 허윤옥(홍서희) 등 애정 전선을 복잡하게 할 인물들이 있어도 장욱과 무덕은 서로에게만 집중한다. 이야기가 드라마와 코미디를 넘나들며 가볍게, 때로는 진지하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가운데 둘의 관계와 감정은 천천히, 탄탄하게 빌드업되고 있다.

지난주 10회로 반환점을 돈 [환혼]은 서로의 옆에 있기 위해 다시 한번 한계를 뛰어넘은 장욱과 무덕을 그리며, 둘 사이의 감정이 사랑임을 확실히 했다. 이용 가치가 다하면 미련 없이 끊을 수 있는 관계로 시작했기에, 감정을 제대로 자각한 두 사람은 혼란을 느낄 테고, 그 사이에 장욱과 무덕을 둘러싼 애정 관계는 흥미를 더할 것이다. 무덕이 낙수의 환혼인 것이나 아직은 미스터리인 무덕의 과거사도 남아 있고, 이는 어떻게든 현재의 장욱과 무덕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까? 이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기대를 품으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