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태양은 없다](1999)를 통해 충무로의 대표적인 콤비로 알려진 정우성과 이정재가 [헌트](2022)로 23년 만에 같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1999년 당시 청춘스타였던 두 사람이 이제는 중견 배우로서, 수많은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그래서 지난 시간 이정재의 소개에 이어, [헌트]를 통해 새로운 얼굴로 관객들을 찾아온 배우 정우성의 영화들을 살펴볼까 한다. 이정재와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다채로운 장르의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을 꾸준히 만나온 배우이기에 찾아보는 재미가 가득할 것이다. 정우성을 세상에 널리 알린 [비트]부터 배우로서 한 단계 더 단단해진 연기를 보여준 [증인]까지, 정우성의 매력에 한껏 빠져들 작품들을 만나보자.

비트(1997)

이미지: (주)우노필름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우성을 청춘스타에서 배우로 거듭나게 만들어낸 영화 [비트] 또한 1990년대 청소년들의 로망과도 같은 작품이다. 당대 불량 청소년들이 모터싸이클과 지포라이터 등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들을 따라할 정도였으니. 허영만 화백의 동명 만화를 영화로 옮긴 [비트]는 고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 ‘민’과 ‘환규’, 그리고 ‘태수’가 각각 다른 일들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청춘들을 그린 영화이다.

정우성은 해당 영화에서 우연히 알게 된 ‘로미’에게 사랑을 느끼는 주인공이자,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는 청춘 ‘이민’ 역을 맡았다. 정우성은 원작 만화 속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로, 해당 캐릭터를 소화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모터싸이클을 최대 속력으로 탑승하여 눈을 감으면서 두 팔을 옆으로 뻗는 모습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남을 명장면이었다. 여기에 상대 배우인 고소영과의 서사가 더해져 [비트]는 당시 서울 기준 35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정우성은 해당 영화를 통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하며 영화배우로서 입지를 다져 나가기 시작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이미지: CJ ENM

정우성하면 조건 반사적으로 생각하는 멜로 영화가 있다. 손예진과 함께 주연을 맡아, 수많은 명대사와 명장면을 남긴 [내 머리속의 지우개]이다. 영화는 우연한 실수로 인연이 닿게 된 ‘수진’과 ‘철수’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사랑을 쌓아가지만, ‘수진’의 뇌가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정우성은 우연히 편의점에서 자기 콜라를 뺏어 마신 여자 ‘수진’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 ‘최철수’ 역을 맡았다. 철수의 직업은 목수, 이 때문에 정우성은 해당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목수일과 건축업에 대해 공부하여 영화 속 의자를 직접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로맨스 영화 답게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라는 달달한 고백 대사와 함께 포장마차에서 서로에게 관심을 드러내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만큼 정우성과 손예진, 두 배우의 필모에서도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작품으로 아직까지 기억되고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이미지: CJ ENM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외국에만 있을 것 같지만, 한국에도 그들과는 다른 퓨전 서부극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668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단연 독보적인 흥행 성적을 거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의 드림 캐스팅으로 주목받은 [놈놈놈]은 1930년대의 세 남자, 돈 되는 건 뭐든 사냥하는 현상금 사냥꾼 ‘도원’과 최고가 아니면 참을 수 없는 마적단 두목 ‘창이’, 잡초 같은 생명력의 독고다이 열차털이범 ‘태구’의 추격전을 스크린에 담았다.

정우성은 해당 영화에서 만주에서 손꼽히는 현상금 사냥꾼이자, 놀라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총잡이 ‘박도원’ 역을 맡았다. 영화의 배경이 1930년대, 때문에 말에 탑승하여 추격전을 벌이기도 하고, 꽤나 큰 크기를 자랑하는 장총을 손목의 스냅으로 돌리며 장전하는 장면 등 화려한 액션을 대역 없이 소화했다. 그만큼 정우성의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는 영화이자, 함께 호흡을 맞춘 이병헌, 송강호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했다.

신의 한 수(2014)

이미지: (주)쇼박스

조범구 감독이 연출한 본격 바둑액션(?)영화 [신의 한 수]는, 내기바둑에 얽혀 형을 잃고 살인 누명을 쓰게 된 프로 바둑기사 ‘태석’이 자신을 음모에 빠지도록 만든 ‘살수’와의 대결을 위해 선수들을 모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우성은 과거 프로 바둑기사였지만, 지금은 내기바둑에 휩쓸려 왼쪽 눈의 시력을 잃고 살인 누명까지 쓴 상태에서 복수를 계획하는 ‘송태석’ 역을 맡았다. 극 중 엄청난 바둑 실력을 갖춘 인물이자, 동시에 크게 밀리지 않는 액션 실력까지 보유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때문에 출중한 두뇌, 뛰어난 피지컬을 자랑하는 캐릭터를 소화하며, 자신의 매력을 온전히 이야기에 녹아낸다.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356만 명의 준수한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아수라(2016)

이미지: CJ ENM

제목처럼 아수라판 속 악인들의 이야기를 다뤄낸 작품이 있다. 배우 황정민이 시나리오를 읽고 “아수라판이네”라고 표현한 것이 영화 제목이 되었다고 알려진 [아수라]가 그 주인공이다. [비트]에 이어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이 다시 만나 화제가 된 이 작품은 강력계 형사 ‘도경’이 악덕시장 ‘성배’의 뒷일을 처리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으며 계속해서 악에 노출, 악인의 길에 들어서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정우성은 아내의 이복오빠인 시장 ‘박성배’로부터 돈을 받고 더러운 일을 처리해주는 부패 경찰 ‘한도경’ 역을 맡았다. 아내의 병원비를 핑계삼아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성격을 소유한 캐릭터로, 정우성은 해당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온갖 욕설과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연기를 선보였다. 무엇보다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사이에서 다양한 갈등을 조장하는 모습을 담아내며 관객을 아수라판으로 데려다 놓는다. 관객들의 갈리는 반응처럼 흥행은 다소 아쉬웠으나, 이 작품으로 정우성은 부산영화제평론가협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에 대한 호평은 계속 이어졌다.

증인(2018)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신의 한 수]부터 [아수라] [더 킹] [강철비] 등 다소 센 느낌의 액션 혹은 범죄 장르의 영화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정우성의 필모그래피에 따스한 미소를 내려준 영화가 있다. 바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과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증인]이다. 이한 감독이 연출하고 정우성, 김향기가 주연을 맡은 [증인]은 민변 출신의 대형 로펌 변호사 ‘순호’가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를 증인으로 세우려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여담으로 이 작품의 대본을 쓴 문지원 작가의 차기작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정우성은 자신이 담당하게 된 살인 사건 용의자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자폐 소녀 ‘지우’를 만나게 되는 변호사 ‘양순호’ 역을 맡았다. 성공을 꿈꾸던 변호사가 어느 소녀를 만나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변화하는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특히 법정에서 호소력 있게 소녀의 증언을 강조하는 모습은 뭉클한 감동도 이끌어낸다. 정우성의 열연이 인상적인 [증인]은 좋은 입소문을 불러모으며 253만 명의 관객을 동원, 흥행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