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동욱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도 현상의 이면이나 비리를 폭로하는 작품들이 있다. 이들 영화들은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소비된다. 특히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는 특정 정치권력이 집권하면서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증가했을 때 제작 유행하며, 작품에 따라 크게 흥행하기도 한다. [공범자들](최승호, 2017)이나 [두 개의 문](김일란, 홍지유, 2012), [그날, 바다](김지영, 2018), [저수지 게임](최진성, 2017)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10만, 20만 관객을 넘긴 작품들도 있다. 대체로 스릴러 문법을 차용해 흡인력을 갖춰 관객들로 하여금 서사에 몰입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더 플랜](최진성, 2017)처럼 단순 폭로에 그치거나 마냥 음모론으로 치부되는 작품도 있지만 우리는 이런 경우에도 작품성을 비판하는 손쉬운 쪽을 택하기보다는, 해당 영화가 제작된 시대적 배경과 제작 주체의 동기를 살피고, 도덕적 또는 정치적으로 각성할 지점은 없는지 등을 다각도에서 살펴보게 된다.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시티즌포’

이미지: 에스디시코리아(주)콘텐숍

2015년 국내 개봉한 [시티즌포 Citizenfour](로라 포이트라스, 2015) 역시 미국 정부가 9.11 테러 이후 불특정 다수 국민을 향해 분별없는 감시를 자행하고 있음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가까이에서 촬영한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에 해당한다. 미국 정부가 대국민 감시를 결정한 배경은 알 만하다.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해 다가올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대규모 감시가 가능하게 하려면 그만한 환경이 조성돼야 하는데, 당장 우리나라만 살펴봐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의 우리는 지문으로 핸드폰 잠금을 풀고,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수많은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일상을 공유하며, 핸드폰으로 대부분의 은행 업무를 해결하고, 심지어 입출금과 대출 계좌 개설까지도 모바일을 통해 은행 방문 없이 처리하고, 모바일 교통카드를 이용한다. 편의점에서도 현금을 내는 경우도 이제는 극히 드물다. 자신이 무엇을 소비하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동했는지 등 생체 반응을 모두 핸드폰에 고스란히 남기고 있는 것이다. 편리하지만, 대단히 위험하다.

이제는 음성을 글자로 변환하는 프로그램도 고도로 발달해 속기사들의 자리가 위태롭다고 할 수준이다. 통화기록을 대량으로 녹취해 이를 문서로 일시에 변환하여 저장하는 것이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정보기관의 암호 해독력만 해도 영화 개봉 시점 기준으로 1초에 1조가 넘는 비밀번호를 입력할 수 있는 수준이니 이미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었다고 볼 수 있다. 스노든이 영화에서 주로 지적하는 부분 역시 바로 이 ‘불법 전자 감청’이다.

이미지: 에스디시코리아(주)콘텐숍

편리함을 거부하고 극도로 위축될 필요도 없지만, 개인 정보 노출 위험에 지나치게 무딘 것도 문제가 된다. 위험을 알고 서비스를 자신이 주체적으로 다루는 것과, 시스템에 마구 휘둘리는 것은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다. 스노든 역시 국내 언론 및 기업 초청 시사회에서 화상 통화를 통해 “무엇을 일거에 바꾸려고 했다기보다는 국민들이 적어도 상황에 대해 알고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드리고자 했다”고 전한 바 있다.

내부 고발이 곤혹스러울 때마다 정부가 내놓는 방어 논리는 한마디로 “국익을 해치는 폭로”라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에드워드 스노든은 이 영화를 제작하던 2013년부터 러시아에 체류 중이며, 2017년 결혼해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다. 미국에선 스노든의 사면을 촉구하는 청원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스노든이 귀국해 국가기밀 폭로죄 등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정보기관의 주장이다. 스노든의 행위를 국익에 반하는 범죄로 보기 때문인데, 미국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스노든이 받게 될 징역형은 최대 20년이다. [시티즌포]가 제시하는 또다른 쟁점이 여기 있다. 누가 국익에 이롭냐는 것이다.

이미지: 에스디시코리아(주)콘텐숍

여기에는 국가에 대한 정의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고 이익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대한 견해 차이도 존재한다. 다만 국가가 범죄 혐의가 없는 국민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법리적 판단 또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학적 접근, 또 국가는 곧 국민이라는 정치학적 접근 등 어떤 쪽으로 보았을 때도 국가의 불법 전자 감청이 ‘국익에 부합할 수는 없다’. 특히 국민들에게 공감대 형성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면서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면, 스노든과 정보 기관 중 어느 쪽이 좀 더 국익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역설적으로 스노든은 가장 앞서서 자유로울 권리를 외치고, 기꺼이 자신의 자유를 박탈했다. 그는 폭로 이후 자신이 처할 상황에 대해서도 “감수하겠다”며 폭로를 계획했다. 사회는 이렇게 특정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면서 아주 조금씩 진일보한다.

다만 [시티즌포]를 아직 보지 않은 영화 팬들에게는 소위 ‘중립 기어를 박아둘 것을’ 당부하고 싶다. 영화가 이미 오래전에 개봉해 국내외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았고, 스노든은 내부 고발로 많은 세계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으니 무장을 해제하고 봐도 될 것이라는 태도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를 대하는 자세로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고급 정보에 익숙한 환경에 있던 사람일수록 경계하려는 자세로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영화도 더욱 돋보인다.

이미지: Variance Films

[시티즌포] 감상을 전후로 함께 보기를 추천하는 작품이 있다. 2013년 EIDF를 통해 국내에 공개된 적이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위 약관에 동의합니다] (Terms and Conditions May Apply)(컬른 호백, 2013)이다. 이 영화에서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 같은 인물들을 주된 비판 대상으로 삼지만, 특정 서비스 이용 시 약관에 쉽게 동의하는 이용자들의 소비 양태 역시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깨알 같은 글자로 몇 페이지나 넘길 분량의 약관을 써 두고 소비자들이 읽지도 않게끔 만든 것은 기업이지만, 정부와 회사가 합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하도록 동의한 것은 다름아닌 소비자 스스로라는 점을 깨닫고 각성하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