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풀잎피리

비극 중의 비극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라고 일컫는 작품 가운데, 가장 슬픈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리어왕]이라 이야기 할 것이다. 이전에는 그냥 늙고 어리석은 아버지가 막내 딸의 진정한 효심을 모르고 결국 인과응보 당하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훌쩍 들고 다시 보니, 이 작품은 그냥 그렇게 단순히 해석하기 힘든, 늙어감과 나약함, 그리고 그로 인해 점점 사그라드는 지혜와 이를 잠식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후, [리어왕]은 젊음을 조금씩 뒤로 하고 조금씩 늙음을 향해가는 나에게 날카로운 경계가 되는 작품이 되었다.

세 명의 대 배우, 세 편의 ‘리어왕’

공교롭게도 나는 지난 3년 동안 국내외 3명의 거장이 연기하는 [리어왕]을 볼 수 있었다. 일단 첫 작품은 우리에겐 ‘간달프’로 잘 알려진 이언 맥켈런의 [리어왕]이다. 영국에서 상연되는 화제의 연극을 라이브로 촬영하여 보여주는 NT live라는 기획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립극장에서 시즌별로 상영하고 있는데, 지구 반대편,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의 수준 높은 연극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매번 체크해 두고 챙겨보고 있다. 이언 맥켈런의 [리어왕]은 2018년에 런던에서 무대에 올린 버전인데, 현대식으로 바꾼 각색과 복장이 인상적인 작품. 그러나 무엇보다 이언 맥켈런의 연륜이 깃든 연기가 엄청났던 작품이다. 실제 오늘 이야기 할 영화 <리어왕>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각색의 초연이 2017년이었다.)

두 번째 [리어왕]은 우리나라 이순재 배우의 연극 [리어왕]이다. 작년(2021년)에 상연되었다. 사실 이언 맥켈런과 안소니 홉킨스의 [리어왕]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리어왕을 연기한다면 과연 어느 분이 있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일단 가장 먼저 이순재 님이 생각났는데, 아마도 이 작품을 올리는 모두가 다 그런 생각을 했던가 보다. 각색과 다른 캐스팅들에서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이순재 배우의 리어왕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무대가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이 작품의 원작도, 연극과 영화도 모두 영어로 영국인이 연기하는 리어왕이라면, 이순재의 [리어왕]은 한국어로 연기하는 한국인의 무대라 더 뜻깊었다. 무엇보다 이순재라는 배우가 가진 특유의 ‘한국 아버지/할아버지’의 이미지가 겹쳐서 정말 독특한 작품이 되었다. 뭐랄까, 옛날 조선시대 나이 들어 치증을 앓는 임금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벌이는 이야기 같았달까. 사실 역사를 곰곰이 곱씹어보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나.

이미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세 번째는 이번 포스트에서 상세하게 다룰 안소니 홉킨스의 [킹 리어] (aka.[리어왕])이다. 뭐, 안소니 홉킨스 역시 더 말해 무엇할 배우란 말인가. 특히 얼마 전 나온 알츠하이머를 앓는 노인의 시점에서 그려진 영화 [더 파더]의 주연을 맡기도 하셨는데, 분명 그 전에 연기한 이 [리어왕]에서 얻은 바가 크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면, 몇 백 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한 셰익스피어의 메시지는 역시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달까.

늙어간다는 것

이미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예전 축소된 버전의 [리어왕]만을 알고 있었을 때는, 리어왕이 태생부터 어리석은 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작을 가급적 많이 살려놓은 버전으로 보고 나서 새로이 알게 된 건, 그가 소싯적에는 무척 지혜롭고 용맹한 왕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켄트와 같은 충성스러운 신하가 그를 마지막까지 지켰으리라. 하지만 세월과 나이 듦은 그의 눈을 가리고 만다. 세월이란 이렇게 허망하고 무섭다. 늙은 왕 리어는 갑자기 세 딸에게 얼토당토않은 ‘입’효심 경쟁을 시켜 영토를 배분한다. 그러는 와중에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막내딸 코델리아를 매몰차게 내친다. 입에 발린 예쁜 말을 안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는 엄청난 저주의 말을 뿜어내며 막내딸과 절연을 선언한다.

솔직히 이 시점쯤 되면 주변에서 왕의 변화를 슬슬 느꼈음 직도 한데, 아마도 왕이 절대 권력을 가졌던 시대엔 이를 제지하기 힘들었겠지. 그렇게 본다면, 코델리어도 다소 이해 못할 지점이 있다. 총기가 흐려진 아버지에게 그냥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 해주는 게 뭐 그리 어렵단 말이냐. 하지만 뭔가 꼿꼿하고 지조 있는 이들은 꼭 이렇게 굽히지 않고 꺾이는 법이다. 그게 작품에서도 역사에서도 되풀이되는 비극일지니.

흐려짐에서 오는 광기

이미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거친 수행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큰딸과 둘째 딸의 영지에서 난동을 부리는 씬은, 아무리 효녀 딸이어도 쉽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반기를 들자 그가 딸에게 퍼붓는 저주의 말은 사실 아무리 악독한 딸들에게라도 쉽사리 용인되기 힘든 그런 악담이다.

들어라, 자연아. 경애하는 여신이여. 만약 이 여자에게 자식을 갖게 할 생각이면 당장 그 뜻을 거두어라. 이 여자의 자궁을 불임으로 만들고 생식기관을 말려 버리며 타락한 몸으로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여라. 행여 자식을 낳더라도 가증스러운 것을 낳아 자라면 부모를 배반하고 부도덕하게 자라서 일생의 골칫거리가 되게 하라. 어미로서의 노고와 보람이 비웃음을 사고 경멸받게 될지어다.

– ‘리어왕’이 큰 딸 ‘고너릴’에게 하는 저주의 말

물론 결론을 알고 보면, 뭔가 예언의 말 같은 느낌도 있지만 그냥 현재 시점으로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섬뜩하고 야멸차다. 이미 리어는 자신의 자아를 서서히 상실해 가고 있다. 첫째 고너릴에게 저주를 하고 둘째 리건에게 가서도 냉대를 당한 리어는 결국 폭풍우 속을 헤매게 되는데, 그때 그의 광기는 극에 달한다. 그리고 우리의 세 명의 대 배우는 그 씬을 각기 다른 결로 연기한다. 그러나 방향성은 같다. 자아를 잃은, 이제 더 이상 전성기의 지혜를 갖지 않은 고약하고 힘없는 노인의 모습이다. 분노에서 다시 포기와 회한으로 가득 차는 마치 롤러코스터 같은 그의 감정선을 볼 때면, 우리는 인생의 허망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세월과 시간에 장사(壯士)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현재

이미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종종 치매를 앓고 있는 부모가 가족과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때로 자신의 자아를 잃고 욕설을 했다는 류의 이야기를 왕왕 듣는다. 예전에는 아주 드물게 보던 치매 어르신의 이야기가 지금은 어느 집에서나 한 번쯤 겪고 있는 우환이 되고 있는 시대. 그리고 그건 훗날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리어의 이야기는 단순히 가족의 지글지글한 고통을 넘어 비극의 폭주기관차를 타고 진행된다. 고너릴과 리건은 자신의 탐욕으로 인해 자멸하고, 리어왕의 주변은 하나하나 비극으로 전염된다. 그리고 이 작품의 결말은 결국 리어가 사랑하는, 그를 꾸준히 아버지로 섬겼던 코델리아의 죽음을 그가 목도함으로써 끝이 난다. 인간이 버텨낼 수 없는 최극단의 비극에서 이 작품은 끝을 맺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선한 애씀으로 극복할 수 없는 운명의 비극을 다룬다는 면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언제나 처참하고 그래서 더 처연하다. [리어왕]은 어리석은 아버지와 그를 둘러싼 탐욕스러운 두 딸, 착하지만 희생양이 된 막내딸의 이야기로 간단히 볼 수도 있지만, 시간과 늙음이 인간을 어떻게 어리석게, 또 무모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것이 의도하지 않게 얼마나 소중한 많은 것을 희생시킬 수 있는가를 극도로 잔인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경계하고 또 경계하며 이 생을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