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존재할까 싶은 츤데레 남사친부터 정말 존재할 것 같은 관종 BJ, 잔뜩 구겨진 스무 살 청춘, 야망을 품은 회사원, 어설픈 고려의 도사, 진실을 파헤치는 맹인 침술사까지. 부지런히 연기하는 배우 류준열은 모두가 다작 배우로 인정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을 게으르다고 말한다. 100편의 영화를 찍고 싶다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아직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물론 하루 빨리 그의 신작을 보고 싶은 팬의 마음은 점점 커지지만 말이다. 배우 류준열의 강점은 무엇일까? 아마 가장 평범한 캐릭터를 가장 입체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일 것이다. 100편의 작품을 쌓기 위해, 앞으로도 쉬지 않을 것 같은 배우 류준열의 출연작 중 영화 위주로 살펴보자.

소셜포비아(2015) / 양게 역

이미지: CGV아트하우스 , CJ Entertainment

인기 BJ 양게와 두 경찰 지망생이 현피 원정대에 참여하던 중, 싸늘한 시체를 발견하고 죽음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소셜포비아]. 인터넷 마녀사냥 문제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20대 청년의 실상을 그린 [소셜포비아]는 류준열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류준열은 이 작품 이전부터 많은 단편 영화에 출연해 자신의 실력을 쌓고 있었다. 그가 연기한 양게는 인터넷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관종 BJ이다. 천연덕스러운 연기 덕분에 실제 BJ를 데려오면 어쩌냐는 후일담이 생성되기도 했다. 배경과 소재 또한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만큼 리얼하고, 분리되어왔던 웹과 현실의 전복은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노량진 고시생, 악플러, 신상 털기, 현피 생중계, 마녀사냥, 스캔들,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의문의 죽음 등 시대적인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엮어 속도감 있게 전한다. SNS에 속했다면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섬뜩한 이야기이다. 여담으로 지금은 충무로를 이끄는 변요한, 이주승, 하윤경 배우들의 풋풋한 모습을 만나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리틀 포레스트(2018) / 재하 역

이미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 일탈을 꿈꾸는 은숙의 특별한 사계절 이야기를 그린 [리틀 포레스트]. 류준열이 연기한 재하는 서울 직장에서 폭언에 시달려 회의감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와 작은 과수원을 차린 평범한 청년이다. ‘힐링 영화’로 입소문을 탔던 동명의 일본 영화를 각색한 작품으로,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제보자]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의 복귀작이었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이의 관계, 사계절의 변화가 따뜻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자연이 주는 여유, 음식이 주는 행복, 오랜 친구가 주는 편안함은 빌딩 숲에서 지쳐가는 모든 청춘들에게 휴식을 선물한다.

독전(2018) / 서영락 역

이미지: (주)NEW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범죄 영화 [독전]. 류준열은 버림받은 조직원 서영락 역할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보여줬다. 무표정해 속내를 알 수 없지만 내면에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서영락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천하장사 마돈나],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을 연출한 이해영 감독,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의 각본을 맡았던 정서경 작가의 협업은 탄탄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독보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스릴 넘치는 전개로 흥행에까지 성공한 작품이다. 전편의 성공에 힘입어 넷플릭스 영화로 2편이 현재 제작 중이다. 다만 현재까지 들린 캐스팅 소식에 의하면 류준열은 출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쉽다. 그런데 모르는 일이다. 2편에서 깜짝 반전처럼 등장할지도.

돈(2019) / 조일현 역

이미지: (주)쇼박스

오직 부자가 되고 싶은 꿈을 품고 여의도 증권가에 입성한 신입 주식 브로커 조일현이 위험하고 달콤한 덫에 걸리는 이야기를 그린 [돈]. 류준열이 연기한 주인공 조일현은 돈 때문에 변화와 성장을 겪는 인물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절망하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어수룩한 신입사원 시절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순수함을 가졌지만, 큰돈을 만질수록 어쩔 수 없이 때가 묻어간다. 영화는 돈과 계급에 대한 씁쓸하고 회의적인 물음에서 출발한다. 돈의 메카라 불리는 여의도 증권가의 현장감이 영화 곳곳에 묻어 있다. [돈]을 연출한 박누리 감독은 [부당거래], [베를린]의 조감독 출신으로, 이 작품으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 모두에게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외계+인 1부(2022) / 무륵 역

이미지: CJ ENM

고려 말 소문 속의 신검을 차지하려는 도사들과 2022년 인간의 몸속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를 쫓는 이들 사이에, 시간의 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외계+인].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도둑들] 등은 연출하며 대한민국 대표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최동훈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 소지섭이라는 화려한 캐스팅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다채롭고 짜릿한 볼거리가 돋보이는 한국형 SF 액션 영화이다. 류준열이 연기한 고려 도사 무륵은 현상금이 걸린 신검을 차지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로, 능청스럽지만 입담과 어설픈 도술로 유쾌한 웃음을 주는 역할이다. 이외에도 지구에서 외계인 죄수를 관리하는 가드,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는 형사, 천둥 쏘는 처자, 비밀을 파헤치는 신선, 가면 속의 자장 등 참신한 캐릭터들의 등장이 휘몰아친다. 이 독보적이고 거대한 세계관은 2023년 공개되는 2부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올빼미(2022) / 천경수 역

이미지: (주)NEW

조선왕가의 의문사인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역사적 미스터리를 그려낸 스릴러 영화 [올빼미]. 류준열이 연기한 천경수는 모두의 민낯을 드러나게 하는 극의 중심인물로, 밤에만 희미하게 앞을 볼 수 있는 주맹증을 가진 맹인 침술사 역할이다. 사악한 비밀과 음모로 얼룩진 사건의 모든 진실을 본 유일한 목격자이며, 모든 분야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한국형 먼치킨 주인공이다. 뛰어난 침술 실력으로 궁에 입성한 후 뜻하지 않게 세자의 죽음을 목격하며, 아들의 죽음 후 광기로 폭주하는 인조와 대립한다. 인조 역할을 맡은 유해진과도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안태진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단 한 줄로 기록된 실제 역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실제 소현세자라면 어땠을까?’ 하는 감독의 흥미로운 상상력이 치밀하게 펼쳐진다. 팽팽한 심리묘사와 강렬한 서스펜스, 예측할 수 없는 반전까지 갖추며 새로운 스타일의 스릴러를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