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

DC가 제임스 건, 피터 사프란의 공동 체제 아래 영화 부분을 새롭게 재정립한다고 발표했다. 혼란스럽다는 반응과 기대가 된다는 반응이 혼재하는 상황이다. DCEU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기존 작품들은 서서히 정리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펼쳐 보이겠다는 것인데, 코믹스에서 습관처럼 세계관을 변경해온 것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런 것이 DC의 정신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코믹스에서는 현재 끝없는 멀티버스 세계를 어떻게든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애쓰면서 세계관 전체에 변화를 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대표적인 슈퍼히어로들에 더 젊은 버전을 추가하는 경향도 보인다. 가령 중년의 브루스 웨인의 배트맨이 열심인 가운데, 브루스 웨인이 아닌 또 다른 배트맨을 만들어 선보이는 식이다. 슈퍼히어로들이 대를 이어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야 흔한 건데, 이전에는 은퇴 혹은 사망한 뒤에 후계자가 이름을 물려받았다면 최근에는 동시에 같은 이름을 사용하려는 추세다. 마블을 봐도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토르, 와스프 등 이름을 공유하는 히어로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새로운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완전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배트맨, 슈퍼맨들은 굳건히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지 세대가 더 확장될 뿐이다. DC의 새로운 출발 속에 얼굴을 비춘 뉴페이스에는 누가 있을까?

키도 마음도 커지는 성장형 히어로 뉴 슈퍼맨

이미지: DC코믹스

새로운 슈퍼맨은 원조 슈퍼맨인 클라크 켄트가 공인한 인물이다. 바로 클라크와 로이스 부부의 아들인 존 켄트로, 아빠엄마의 격려와 응원을 받으며 슈퍼맨이 되었다. 클라크는 우주로 임무를 수행하러 나서면서, 존에게 슈퍼맨의 이름을 물려주고 지구를 부탁했다. 존은 첫 등장 당시에만 해도 초능력 귀염둥이 포지션이었는데, 할아버지 손잡고 우주에 한 번 나갔다 온 뒤로 훌쩍 자라버렸다(지구와는 시간 개념이 다른 곳에 있었던 탓에 청소년으로 성장했다). 얼마 전 있었던 다크 크라이시스라는 사건에선, 지구를 지키기 위해 직접 저스티스 리그를 결성하고 있는 힘껏 싸워 그 깐깐한 블랙 아담으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했다. 아직은 가진 힘에 비해 경험이 부족해서 노련한 어른들의 지도편달이 필요하지만, 배트맨은 존이 자기 아빠보다 더 강력한 힘을 나타낼 잠재력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워낙 어려서부터 등장했기에 육성형 장르를 보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망나니 출신의 뉴 배트맨

이미지: DC코믹스

배트맨이 한 명 더 필요하다면 브루스 웨인의 수많은 로빈들 중 하나가 선택되어야 할 것 같지만(나이트윙이 한때 배트맨으로서 동시에 활동한 적이 있긴 하다), 이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 배트맨이 되었다. 심지어 허락을 받은 것도 아니고, 멋대로 브루스 웨인의 슈트를 가져다 입고 시작했다. 브루스가 배트맨이라는 것을 아는 사적, 공적 조력자인 루시어스 폭스의 사생아인 티모시 폭스가 그 인물이다. 브루스도 슬프고 어두운 과거가 있지만 이 배트맨의 과거는 다른 의미로 어둡다. 풍족한 환경에 빠져 흥청망청 돈 쓰고 놀기만 하던 티모시는 부주의하게 운전하다가 사람을 치고 달아나는 뺑소니사고를 냈고, 아버지는 돈과 권력을 이용해 사건을 무마한 뒤에 아들을 사관학교로 보내버렸다. 사고를 내고 새사람이 된 티모시는 부잣집 망나니들을 교육하는 이 사관학교에서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비밀요원이 되었다. 브루스 웨인이 몰락한 뒤에 숨겨진 배트맨 슈트를 발견한 티모시는 그 누구의 허락도 없이 배트맨이 되었고, 이후의 활약 덕분에 집안의 수치에서 자랑스러운 구성원으로 당당히 탈바꿈 하는데 성공했다.

내 길은 내가 만든다! 뉴 아쿠아맨

이미지: DC코믹스

빌런인 부모를 따르길 거부하고 정반대의 길을 가는 히어로들이 있다. 레이븐, 두 명의 배트걸들, 키드 플래시 등등. 잭슨 하이드의 경우에는 아틀란티스 여성과 보물사냥꾼 블랙 만타 사이에서 태어났다. 블랙 만타가 아틀란티스의 보물을 훔치려는 의도로 자신에게 접근했음을 알게 된 어머니는 지상으로 도망쳐서 혼자 잭슨을 낳았고, 블랙 만타로부터 숨기 위해 아버지의 정체를 철저히 숨겨왔다. 전기를 발사하고 물을 조종하는 등 물려받은 아틀란티스인의 특성을 가진 잭슨은 무작정 틴 타이탄스를 찾아가서 히어로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쿠아맨과는 전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이였지만, 함께 하기 위해 제 발로 그를 찾아갔고, 나중엔 스스로 ‘아쿠아맨’의 이름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 그냥 돌진하고 보는 무모한 성격이지만, 그나마 평소의 행실과 노력을 통해 인정을 받았으니까 다 허락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김치를 즐겨 먹는 뉴 그린 애로우

이미지: DC코믹스

그린 애로우인 올리버 퀸의 아들 코너 호크 역시 그린 애로우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코너는 조금 특별한 위치의 캐릭터인데, 외할아버지는 흑인, 외할머니는 한국인, 아버지인 올리버는 백인인 다문화 가정 출신이다. 어머니와 외할머니, 이모할머니와 함께 김치와 한식을 먹으며 자란 코너는 K-문화에 익숙한 소년이다. 또한, DC 최초의 무성애자 히어로라는 설정이다. 그렇다고 배경이 전부가 아닌 것이, 물려받은 핏줄 덕에 굉장한 활솜씨를 지녔으며 브루스 웨인의 아들인 로빈의 맞수가 될 정도의 훌륭한 격투가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많이 등장한 편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캐릭터다. 

아마존의 아마존, 뉴 원더걸

이미지: DC코믹스

슈퍼맨과 배트맨이 새로 나왔으면 원더우먼도 새로 나와야 하겠지만, 아쉽게도(?) 원더우먼이라는 타이틀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야라 플로르는 원더우먼은 아니지만, 원더걸이란 이름으로 원더우먼에 준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도나 트로이와 카산드라 샌즈마크라는 기존의 원더걸들이 있지만, 이들과의 차별점은 브라질의 아마존 지역 출신이라는 것이다. 아마존이란 이름 하면 아무래도 브라질의 아마존을 떠올리게 되는데, 진짜로 그곳에도 아마존 종족이 있다는 설정이다. 야라는 테미스키라에서 여행을 온 어머니와 브라질 강의 신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올림푸스 신들에 의해 어머니가 살해되자 미국으로 도망쳐 그곳에서 성장했다. 21세가 되어 브라질로 돌아간 야라는 헤라 여신에게 정면으로 반대하고 어머니의 살해범을 밝혀내는 등 만만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나서, 원더우먼으로부터 원더걸의 칭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