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영화 속 아이들의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마냥 유쾌하고 즐겁다면 좋겠지만, 그 작은 가슴속에도 나름의 고민과 사정들이 있다. 거대한 세상에 맞서는 작은 날갯짓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지나온 유년이기도 하다. 노스탤지어 소환은 기본,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놀라움도 함께 있다. 아이들의 성장을 그린 아래 5편의 영화들이 그 향수를 자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고, 꼭 껴안아 주고 싶은 아이들의 세상을 영화를 통해 만나보자.

마틸다(1996)

나쁜 어른들의 악행, “멈춰!”
이미지: 소니 픽쳐스

초능력을 지닌 천재 소녀 ‘마틸다’의 ‘교장 쫓아내기 작전’이 펼쳐지는 영화 [마틸다]. 마틸다는 중고차 매매업을 하는 사기꾼 아버지와 허영으로 똘똘 뭉친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며, 꽃이 만발하고 나무가 우거진 예쁜 집에서 그네를 타며 사는 예쁜 꿈을 꾼다. 그리고 마틸다가 6살이 되던 해, 딸을 성가시다고 느낀 아버지는 마틸다를 이상한 학교에 입학시킨다. 담임 선생님은 착하고 친절하지만, 교장은 아이들을 어둡고 좁은 방에 가두거 공처럼 던지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소녀 마틸다는 친구들과 힘을 합쳐, 아이들을 괴롭히는 교장을 쫓아내기로 한다.

태어날 때부터 남달리 깜찍하고 총명한 소녀 마틸다의 세상을 그린 [마틸다]는 ‘로알드 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가족 판타지 코미디 영화이다. 영화 속에는 착한 어린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나쁜 어른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이 현실적인 설정 위에 초능력으로 그 어른을 물리친다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녹아든다. 영화는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마틸다의 시선처럼 아기자기하고 화사한 영상미를 뽐내지만, 어쩐지 씁쓸한 스토리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최근에는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

뮤지컬을 영화화한 넷플릭스판 마틸다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

천국의 아이들(1997)

1등이 아닌 2등을 기억하는 행복한 세상
이미지: 미라맥스

청정 남매가 선사하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운동화 릴레이’를 그린 영화 [천국의 아이들]. 초등학생 ‘알리’는 심부름을 하던 중 동생 ‘자라’의 하나뿐인 구두를 잃어버리고, 남매는 운동화 한 켤레를 번갈아 같이 신으며 아슬아슬한 달리기를 이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 마라톤 대회 3등 상품이 운동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알리는 1등도, 2등도 아닌 3등을 목표로 대회에 참가한다. 과연 남매는 새 운동화를 가질 수 있을까?

무공해 남매가 살아가는 순백의 세상을 그린 영화 [천국의 아이들]은 1997년 공개된 이란 영화이다. 영화는 1997년 아카데미 최고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올랐었고, 연출을 맡은 마지드 마지디 감독은 [천국의 아이들]을 통해 이란의 대표 감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한 편의 잔잔한 동화 같은 이야기로 전개되며, 그 속에서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남매의 우애와 가족애가 돋보인다. 삭막하고 흐린 세상도 천국으로 만들어 버리는 아이들의 하얀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꼬마 니콜라(2009)

8인의 악동들이 펼치는 귀여운 반란
이미지: (주)프라임엔터테인먼트

8인의 악동들이 펼치는 유쾌한 반란을 그린 [꼬마 니콜라]. 5차원 엉뚱소년 ‘니콜라’는 동생이 생기면 첫째인 자신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후의 방법으로 무시무시한 갱단에게 동생을 납치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귀여운 오해와 엉뚱한 공상에서 유쾌한 소동이 시작된다. 주인공 니콜라를 비롯해 항상출출 먹보대장 ‘알세스트’, 우유빛깔 도련님 ‘조프루아’, 앞잡이 밉상범생 ‘아냥’, 허세짱 파파보이 ‘뤼피스’, 무쇠주먹 동네파이터 ‘외드’, 엣지있는 전교꼴지 ‘클로테르’, 촐랑방구 깨방정 ‘요아킴’까지. 귀여운 꼬마들의 일상이 지루할 틈 없이 펼쳐진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세상을 그린 [꼬마 니콜라]는 벨기에 신문 ‘르 무스틱’에 1956년부터 1958년까지 연재된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모두를 어린 시절로 초대하는 이 만화는 프랑스 작가 르네 고시니와 삽화가 장 자크 상페의 대표작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동화 중 하나로 꼽힌다. 니콜라와 친구들, 주변 어른들의 소소한 일상을 그린 이 영화는 티 없이 순박한 어린 시절의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멋진 어린 시절로의 시간 여행’이라는 어른과 아이 모두의 자화상을 만나볼 수 있다.

‘꼬마 니콜라’의 원작 만화는 국내에도 출간된 바 있다.

홈(2017)

14살 소년이 꿈꾸는 ‘가족의 탄생’
이미지: 리틀빅픽처스

열네 살 소년의 행복 만들기 프로젝트를 그린 영화 [홈]은 가족과 함께이고 싶은 ‘준호’가 새로운 가족을 만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동생 성호, 성호의 친아빠 원재, 원재의 딸 지영까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식구가 생긴 준호는 매일매일 행복하다. 하지만 어쩐지 불안한 마음도 함께 드는데, 이제 막 새 가족 속으로 골인한 준호의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

안식처가 필요한 소년의 불안한 세상을 그린 [홈]은 새로운 가족 형태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 묵직한 메시지와 뜨거운 울림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덕혜옹주], [가려진 시간], [사도] 등에서 쟁쟁한 스타들의 아역을 맡으며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 ‘리틀 소지섭’ 이효제가 준호 역할을 맡았다. 이효제와 더불어 충무로의 떠오르는 아역 배우 임태풍, 김하나가 사랑스러운 케미를 보여주며 관객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클로즈(2022)

순수하고도 서글픈 나의 유년시절
이미지: ㈜ 51k, (주) 하이스트레인저

5월 개봉한 영화 [클로즈]는 두 소년의 아름답고 쓸쓸한 이야기를 그린다. 목가적인 시골의 한 마을, 13세 소년 레오와 래미는 무엇으로도 깰 수 없어 보이는 친밀한 우정을 나누며 지낸다. 그러나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둘은 친구들에게 관계를 의심받기 시작한다. 이후 낯선 시선이 두려워진 레오는 레미와 거리를 두고, 홀로 남겨진 레미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고 만다. 점차 균열이 깊어져 가던 어느 날, 레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클로즈]는 두 소년의 혼란스러운 세상이며, 유년 시절 상실에 대한 서글픈 초상이다. 트랜스젠더 발레리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걸]을 통해 놀라운 데뷔작을 선보였던 루카스 돈트 감독의 신작이다.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2022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