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이미지: 주식회사 블루필름웍스

새하얀 깃털과 축 늘어진 부리를 가진 펠리컨은 산 것을 통째로 삼키는 습성을 가졌다. 실제로 호숫가의 비둘기나 제 앞에서 으르렁거리는 강아지를 한입에 잡아먹는 장면을 뉴스에서 종종 접할 수 있다. 먼 섬에서는 펠리컨을 주제로 한 사진전도 종종 열린다. 이처럼 펠리컨은 위험하지만 친근한 동물이다.

2019년 개봉한 영화 [스톰 보이]는 펠리컨 삼둥이와 귀여운 꼬마 집사 마이클의 생애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다소 거칠게만 묘사되었던 펠리컨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콜린 티엘의 1964년 아동용 베스트셀러 소설인 「Storm Boy」를 원작으로 하며, 원작은 호주에서 국민 소설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3년 「폭풍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수입하여 출간되었다.

영화는 [피터 래빗], [정글북]의 제작진이 힘을 합쳐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선물했다. 또한 즐린어린이청소년국제영화제 어린이연기상 수상은 물론, 호주영화제작자상 장편제작사상과 호주비평가협회상 주제가상 등에 노미네이트되며 현지 언론과 관객들의 뜨거운 극찬을 불러일으켰다. 촬영지는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쿠롱 국립공원으로, 영화와 마찬가지로 실제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드넓은 바다와 자연의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이다. 동물과 인간의 특별한 우정으로 많은 감동을 자아낸 이 영화, 여러 가지 시선으로 영화의 매력을 만나보자.

어느 날, 세상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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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톰 보이]는 노년에 들어선 마이클의 악몽에서 시작된다. 거센 바람이 마을을 뒤덮고, 누군가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악몽이다. 마이클은 곧 잠에서 깨지만, 현실에서 또 다른 갈등을 마주한다. 자신이 물려준 사업으로 필라바 채굴 운동을 시작하려는 사위와 채굴 중지를 부탁하는 어린 손녀 때문이다. 마이클은 손녀 매들린에게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 후 목소리를 내라고 말하지만, 매들린은 그땐 이미 늦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매들린은 믿었던 할아버지 마이클에게 실망감을 느끼고, 비겁하다는 말까지 남긴다.

그날 저녁, 마이클은 매들린에게 자신의 ‘해변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와 불화가 있던 어린 마이클은 사람들과 멀어지려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도시에서 외딴 해변가로 정착한다. 수풀이 무성한 모래 언덕이 있고, 거대한 대양과 얕은 바다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세상과 단절돼 살아온 마이클은 그날 처음, 세상이 자신에게 다가왔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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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변에 적응해갈 때쯤, ‘핑거본 빌’이라는 이름의 원주민이 마이클에게 다가온다. 그는 폭풍 속에서 걸어 나온 마이클에게 ‘만타우 야우리’라는 새 이름을 지어준다. 두 사람은 무차별적인 사냥으로 어미를 잃은 아기 펠리컨 세 마리를 발견하고, 마이클은 본격적으로 아기 펠리컨들의 집사 생활을 시작한다. 수의사는커녕 도서관도 없는 해변가에서 서툴지만 요리를 만들어 먹이고, 나무를 잘라 작은 터전을 만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마이클의 아빠이자 은둔자로 불리는 ‘톰’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했지만, 이내 새들을 위해 자신의 목도리를 내어주며 집사 생활에 동참한다. 모두의 보호 덕분에 펠리컨들은 무럭무럭 자라게 되고, 마이클 가족 또한 펠리컨들 덕분에 웃음을 되찾기 시작한다.

펠리컨들은 어느새 마이클의 키를 훌쩍 넘길 만큼 자라나 버렸다. 마이클의 아빠는 야생동물인 펠리컨들은 이곳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아빠의 말은 분명히 맞다. 3~40년의 수명을 가진 펠리컨들을 마이클이 평생 돌봐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매일 양동이에 물이 차기만을 기다리던 펠리컨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고,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결국 펠리컨들을 위해 헤어짐을 결심한 마이클은 곧바로 ‘야생 교육’을 시작한다. 얕은 해변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는 법, 날개를 퍼덕여 멀리 나는 법 등 아무것도 모르는 펠리컨들에게는 가르쳐야 할 것이 많다.

펠리컨처럼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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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또한 펠리컨으로부터 배운 것이 많다고, 핑거본 빌은 넌지시 알려준다. 핑거본 빌의 부족에서는 펠리컨을 ‘나하찌’라고 부른다. ‘친구’라는 뜻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펠리컨은 오래전에 사람이었으며 카누 위에서 세상을 바라봤고, 그런 이유에서 펠리컨이 죽으면 폭풍이 온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까지 꺼낸다. 핑거본 빌은 “네가 나하찌를 돌봐주면 그들도 널 돌봐줄 것”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바다에 거센 폭풍이 몰아치던 날, 배를 몰고 나간 아빠 톰이 위험에 처한다. 펠리컨 퍼시벌의 도움 덕분에 다행히 톰을 구할 수 있게 된다. 이 이야기를 들은 현재의 손녀는 ‘해피엔딩’이라고 말하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후 소식을 들은 펠리컨 사냥꾼들이 다시 해변가로 몰려들어오고, 결국 펠리컨들은 낯선 사냥꾼에 의해 희생당하고 만다. 펠리컨은 인간을 구했지만, 인간은 펠리컨을 구할 수 없는 결말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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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를 들려준 노년의 마이클은 그 외딴 해변가로 손녀를 데리고 온다. 그곳에서 펠리컨과의 이별을 회상하며, “그런 슬픔은 난생처음이었다”고 말한다. 펠리컨들을 떠나보내던 날, 마이클은 처음으로 외로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로서, 꼬마 집사였던 마이클로서, 필라바 채굴 운동을 막는 데 힘을 실어주고자 손녀의 편이 되어주기로 한다. 자신을 닮은 손녀 매들리에게서 어린 자신을 발견했을 테고, 어린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을 테다. 또한 이것은 마이클이 생각하는 ‘한 가족을 구하는 법’이었을 테다. 헛된 욕심일지도 모르는 펠리컨을 키우는 일에 아버지가 동참해 주었기 때문에, 마이클이 따뜻한 기억을 품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마이클은 유년 시절, 가장 중요한 모든 것을 펠리컨에게서 배웠다. 스스로 나는 법과 친구 곁으로 돌아오는 법, 친구를 구해주는 법까지. 원주민들이 왜 펠리컨을 ‘친구’로 여겼는지,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왜 거대한 폭풍이 일었는지. 영화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순수하고, 따뜻하게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