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화란’ 이미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76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된 [화란]이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송중기, 홍사빈 주연, 김창훈 감독 연출의 누아르 영화 [화란]은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뛰어든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렇게 세상의 어둡고 암울한 면을 그린 누아르 영화는 매캐한 여름밤에 어울리는 장르이며, 거칠고 강렬한 매력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보석 같은 K-누아르가 더욱 주목받기를 바라며, 한국의 대표적인 누아르 영화 5편을 소개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이미지: (주)라이크콘텐츠

19살, 그 사건 이후 모든 것이 어긋난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공고 졸업생인 석환(류승완)과 성빈(박성빈)은 당구장에서 예고생들과 시비가 붙는다. 본격적으로 패싸움이 시작된 후, 친구들의 싸움을 말리던 성빈은 실수로 예고생 현수(김수현)를 살해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로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하고, 석환과 성빈은 둘만의 기나긴 전쟁을 치르게 된다. 이 전쟁은 주인공들의 고교 시절을 다룬 ‘패싸움’, 어둠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되는 ‘악몽’,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우는 ‘현대인’, 제대로 누아르의 향기를 품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까지, 총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6500만 원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보석 같은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감독 류승완(직접 출연도 한다), 배우 류승범의 혈기와 패기가 가득 담긴 그들의 데뷔작이다. 류승완 감독은 스스로를 ‘포스트 타란티노 세대’라고 말하며 타란티노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왔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국내에서 [저수지의 개들]에 곧잘 비견된다. 탁월한 시퀀스와 다큐멘터리 같은 거침없는 연출을 비롯해 ‘폭력’이라는 중요한 모티브를 매혹적으로 풀어냈다는 점, 일반적이지 않은 옴니버스 형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저수지의 개들]만큼이나 매력적이다.

달콤한 인생(2005)

이미지: CJ ENM

꿈처럼 달콤하고, 죽음처럼 씁쓸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달콤한 인생]. 냉철하고 명민한 조직의 완벽주의자 선우(이병헌)는 냉혹한 보스 강사장(김영철)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강사장의 애인 희수(신민아)를 감시하던 선우는 희수의 외도 현장을 급습하지만, 알 수 없는 망설임 끝에 그들을 놓아준다. 그것이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믿으면서. 하지만 이 선택으로 선우는 어느새 조직 전체와 적이 되어 버리고,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김지운 감독과 배우 이병헌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달콤한 인생]은 한국의 대표적인 누아르 영화이다. 긴 여운을 남기는 결말과 명대사들, 우아한 연출 덕분에 우아한 누아르라 하여 ‘우아르’라고도 불린다. 또한 극적인 연출을 강조하는 김지운 감독의 특징이 강하게 드러난다. 사심이 거세된 조직 세계에서 사소한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가련하고, 처절하게 추락해가는 모습이 그렇다. 김지운 특유의 ‘멋’과 이병헌의 명연기를 꼭 감상해보자.

황해(2010)

이미지: ㈜쇼박스

지독한 놈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절박한 사투를 그린 영화 [황해]. 한국으로 건너간 아내와 연락이 끊긴 연변의 택시 운전기사 구남(하정우)은 청부 살인을 위해, 그리고 아내를 만나기 위해 황해를 건너온다. 매서운 바다를 건너 서울로 온 구남은 살인 기회를 노리는 동시에 아내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하지만 목표물은 구남의 눈앞에서 살해당하고, 그는 살인 누명을 쓴 채 경찰에 쫓기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청부살인 의뢰인 태원(조성하)과 연변의 살인청부업자 면가(김윤석) 또한 구남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리얼리티의 진수를 보여주는 [황해]는 나홍진 감독, 하정우, 김윤석이 [추격자] 이후로 다시 합을 맞춘 작품이다. 하정우와 김윤석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뛰어난 시나리오’라고 입을 모아 언급했고, 완벽주의적인 감독 나홍진이기 때문에 수긍이 가는 지점이다. [황해]는 액션 스릴러, 누아르 장르를 표방하지만, 사실 한 인간의 운명과 생에 대한 깊고 광활한 드라마이다. 실화를 참고한 만큼 극사실적인 연출이 돋보이며, 이 리얼리티에 디테일이 더해져서 여러모로 ‘지독한’ 작품이 되었다. 무엇보다 하정우의 본능적인 연기와 김윤석의 카리스마는 관객의 숨을 죽이게 만든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이미지: ㈜쇼박스

넘버원이 되고 싶은 나쁜 놈들의 한판 승부를 그린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1982년, 해고될 위기에 처한 비리 세관원 최익현(최민식)은 부산 최대 조직의 젊은 보스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는다. 머리 쓰는 나쁜 놈과 주먹 쓰는 나쁜 놈은 곧 부산을 접수하고,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가 펼쳐진다. 하지만 1990년, 정부 차원에서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고 조직의 의리에는 금이 간다. 넘버원이 되고 싶은 나쁜 놈들 사이에서 배신이 시작되고, 살기 위한 치열한 승부가 벌어진다.

관록의 최민식, 패기의 하정우가 뭉친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수리남]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는 부산의 1982년부터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1990년까지, 10년의 세월을 경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80년대의 향수가 느껴지는 발랄한 배경음악과 냉소적 유머 등 수위 높은 스릴러 요소 대신 코미디적 요소를 녹여냈고, 여기에 갱스터에 대한 미화 없는 묘사까지 더해져서 호평을 받았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진짜 ‘한국적 갱스터’를 만나볼 수 있다.

신세계(2013)

이미지: (주)NEW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세 남자가 펼쳐 나가는 ‘신세계’를 그린 영화 [신세계]. 국내 최대 범죄 조직인 ‘골드문’의 세력이 확장되자, 경찰청 수사 기획과 강과장(최민식)은 신입경찰 이자성(이정재)에게 잠입 수사를 명한다. 이에 이자성은 골드문의 2인자이자 그룹 실세인 정청(황정민)의 오른팔이 되기에 이른다. 피도 눈물도 없는 후계자 전쟁의 한 가운데, 정청은 친형제처럼 모든 순간을 함께 해 온 자성에게 강한 신뢰를 보낸다. 자성은 언제 자신을 배신할지 모르는 경찰과 자신을 형제의 의리로 대하는 정청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의리와 음모, 배신의 세계를 그린 [신세계]는 [마녀] 시리즈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작품이며 이정재, 최민식, 황정민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이들은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경찰은 악당 같은 음모와 작전을 꾀하고, 악당이어야 마땅한 조직은 피보다 진한 형제애를 선보이며, 비열해야 할 악당에게서 진한 동지애가 배어 나온다. ‘자신의 목표와 욕망을 향해 목숨까지 걸고 나아가는 멋진 남자들의 세계’를 그리고 싶었다던 감독의 의도가 확실히 전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