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

승승장구하던 슈퍼히어로 영화는 현재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계속해서 쏟아지는 마블과 DC의 작품들에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도 주 원인일 것이다. 자꾸만 커져가는 세계관에 싫증이 났다면 전혀 다른 슈퍼히어로 작품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마블도 DC도 아닌 또 다른 세계의 실사화된 히어로들에게서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다면 열강의 물량공세로 인해 시들해진 슈퍼히어로물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옥에서 돌아온 히어로 ‘스폰’

스폰은 최초의 흑인 히어로는 아니지만 ‘최초로 주인공으로 영화화된 흑인 히어로’이다. 원작은 한창 다크한 성향의 히어로물이 인기를 끌던 90년대에 인기를 얻은 코믹스 시리즈로, 1992년부터 지금까지 이미지 코믹스에서 연재 중에 있으며, 수많은 스핀오프 작품들이 나왔다. CIA 요원이 배신을 당해 살해된 뒤에 악마의 요원으로 부활하여 자신의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스폰은 남은 가족과 친구들을 지키려고 애쓰며 자신을 이용하길 원하는 지옥의 악마들과 싸워나간다. 원작의 상업적 권리를 갖고 있는 창작자 토드 맥팔란이 제작에 직접 관여한 영화는 1997년에 나왔는데, 당시 기술로서는 구현이 힘들었던 지옥의 풍경이나 캐릭터 묘사가 이질적이고 어색해서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영화 개봉과 동시에 HBO를 통해 애니메이션 시리즈도 방영되었는데, 국내에도 비디오로 출시되었으며 에미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어 영화보다 낫다는 평을 들었다. 토드 맥팔란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스폰 캐릭터는 다시 실사화 될 예정이다.

착하지만 약간 모자란 히어로 ‘더 틱’

1986년에 동네 만화서점에서 마스코트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틱은 뜻밖의 호응을 얻어 정식으로 코믹스가 출간되기 시작하더니, 1994년엔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2001년엔 드라마 시리즈로까지 제작되었다. 엄청나게 강하지만 힘쓰는 것에 비해 머리는 조금 부족한 이 불멸의 히어로 틱은 아마존 프라임에서 2016년에 새롭게 드라마화해서 2시즌까지 제작되었다. 아버지를 죽인 빌런을 추적해온 회계사 아서가 우연히 만난 슈퍼히어로 틱과 함께 본격적인 모험에 나선다는 내용의 코미디물이다. 아서의 집착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가족과 동네 사람들, 심지어 히어로와 범죄자들까지 휘말리며 엉뚱한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진다. 매 에피소드가 다 이어지는 내용이지만 전체적으로 심각하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인류의 편에 선 악마 ‘헬보이’

악마의 아들이 인간의 편에 서서 싸운다는 내용의 [헬보이]는 다크호스 코믹스를 통해 발표되었으며, 원작자 마이크 미뇰라의 평생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장기 연재중이다. 헬보이는 불가사의 현상을 연구하고 방어하는 조직인 B.R.P.D.의 요원으로 자라나, 세계 곳곳에서 여러 초자연적 존재들을 상대한다. 2004년과 2008년의 영화는 초자연 판타지에 재능이 뛰어난 기예르모 델 토로가 감독을 맡았다. 배우 론 펄먼이 다혈질이지만 사실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인 헬보이를 연기하며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9년에는 [기묘한 이야기]로 스타가 된 데이비드 하버가 새로운 헬보이를 연기하는 새로운 영화가 발표되었다. 리부트 작품이었기 때문에 헬보이의 기원이 다시 다루어졌고, 원작의 여러 요소들을 많이 가져왔다.

빌런보다 더 나쁜 히어로, ‘더 보이즈’

다이너마이트 엔터테인먼트의 [더 보이즈]는 가스 에니스 원작으로, 2019년에 아마존 프라임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되어 시즌이 이어져 오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각색을 했지만 슈퍼히어로에 대한 풍자라는 작품 고유의 가치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슈퍼히어로도 사람인만큼, 겉보기엔 화려한 연예인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된다. 슈퍼히어로 장르를 비트는 것은 많이들 시도하고 있지만, 명백히 슈퍼맨을 모방한 ‘홈랜더’를 비롯한 히어로들이 이렇게까지 사악하게 등장하는 작품이 있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정체를 알고 대적하는 쪽도 반드시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평범한 인간들이 슈퍼히어로들을 상대하며 보여주는 무력감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불멸의 인간병기 ‘블러드샷’

한때 국내에도 출간되었던 밸리언트 코믹스는 제법 큰 규모의 밸리언트 유니버스를 보유하며 1980년대에 인기를 모았던 출판사이다. 마블 스튜디오의 성공을 지켜본 이들도 자신들의 캐릭터들을 이용한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으로 프랜차이즈화를 시도하였으니, 그 첫 주자가 선두주자가 [블러드샷]이다. 빈 디젤이 주연을 맡고 소니 픽처스에서 공개한 이 영화는 나노 장치의 이식을 통해 어떤 부상을 입어도 단숨에 재생하는 인간병기 블러드샷의 복수극을 그렸다. 흔한 설정에 약간의 변주를 준 영화 자체는 무난했지만, 기대 이하의 성과로 인해 차기 프로젝트 자체가 현재로선 불투명하게 되었다.

세상을 구하는 특별한 가족 ‘엄브렐러 아카데미’

유명 록밴드인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보컬인 제러드 웨이는 독특한 요소를 가미한 코믹스 작품들을 쓰는 작가이기도 한데, 그의 대표작이 다크호스 코믹스를 통해 출간된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리즈이다. 어느 괴짜 부호가 한 날 한 시에 갑자기 태어난 7명의 아기를 입양하여 슈퍼히어로로 키웠다는 독특한 작품인데, 넷플릭스에서 이를 시리즈로 만들었다. 서로 갈등을 겪고 멀어진 이 7남매가 세상의 종말을 막아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어쩔 도리 없이 협력하고 화해해가며, 때론 바보 같은 짓도 하면서 해결해가는 내용이다. 남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들의 설정이 재미있는 작품이다.

끝을 맺지 못한 대서사시 ‘주피터스 레거시’

영화로 만들어져 호평을 받은 [킥 애스]와 [원티드]의 공통점은 원작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들을 쓴 마크 밀러는 자신이 권리를 갖고 있는 여러 작품들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마블과 DC에서 [시빌 워]나 [슈퍼맨: 레드 선] 같은 명작 스토리를 쓰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거액의 돈을 들여 마크 밀러의 작품들을 영상화하기로 하면서, [주피터스 레거시]라는 드라마가 그 첫 결과물이 되었다. 1시즌은 대공황시대에 초능력을 얻게 되는 주인공의 과거 이야기와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최강의 슈퍼히어로인 ‘유토피안’으로서의 현재 상황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후반부에 이르러 본격적인 갈등과 분열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들인 돈에 비해 성과가 좋지 않자 이후의 계획들은 중단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