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4일 개막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드디어 폐막한다. 10일간 부산 영화의전당을 비롯한 곳곳에서 영화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축제, 기대감의 설렘이 컸던 만큼 끝나가는 지금의 아쉬움도 크다. 그럼에도 잠시의 작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영화제 기간 동안 인생 작품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에디터들이 부산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던 3편을 소개한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 괜찮은 이야기 괜찮은 캐릭터 괜찮은 감동

이미지: 부산국제영화제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살벌한 세상에 홀로 남겨졌지만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고등학생‘인영‘(이레)의 이야기를 그린다. 자칫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될 수 있었는데, 굳센 인영은 그런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엇 하나 괜찮을 것 없는 상황을 괜찮게 바라보고, 세상을 원망하거나 탓하지도 않는다. ‘괜찮아‘라는 말을 잘 믿지 않는데도 인영의‘괜찮아’는 너무도 투명해서 안심이 된다. 이렇게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마법까지 부리는 인영을 보고 있자면,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우리 어른들이 저절로 부끄러워진다.

영화는 주인공의 흔한 성장 스토리로 흘러갈 것 같지만, 점차 의외의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정확히는 그들이 차곡차곡 만들어가는 관계에 집중한다. 친구, 이웃, 스승,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재건되어 가는 풍경이 다채롭게 펼쳐지며 따뜻한 힐링으로 이어진다. 그 모든 것을 흘려보내지 않고 소중하게 지켜낸 인영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긍정과 근성으로 무장한 인영 캐릭터는 이레 배우에게 꼭 맞는 옷이었다. (에디터 혜연)

‘본인 출연, 제리’ – 절망을 딛고 열정으로 승화된 이 시대의 아버지

이미지: 부산국제영화제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독특한 형식으로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한 영화가 있다. [본인 출연, 제리]가 바로 그 영화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실화임을 강조하며 가족의 홈 비디오를 통해 제리의 과거를 조명한다. 대만에서 온 이민자 제리는 미국에서 40년간 열심히 일하며 세 아들을 키운 평범한 가장이다. 은퇴와 이혼으로 검소하게 혼자 지내던 제리에게 중국 본토에서 걸려온 공안의 전화로 평화롭던 일상이 흔들린다.

[본인 출연, 제리]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프로듀서인 제리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되었다. 상영이 끝난 후 GV에 참석한 배우 제리는 본인이 겪은 일을 영화화하여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는 제작 동기를 밝혔다. 중년의 가장 제리의 시선에서 겪는 보이스피싱의 과정이 유쾌하고 재미있게 그려지지만 이미 한국에 만연한 이야기로, 반전이 예상가능한 부분은 조금 아쉽다. 보이싱피싱으로 전 재산을 날렸음에도, 열정을 가지고 영화를 제작하며 제리와 가족이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모습에서 희망이 느껴진다. 범죄 실화극을 가지고도 가족애와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 영화의 솜씨가 놀랍다. (에디터 보광)

패스트 라이브즈 – 차근차근 빌드업하다 마지막에 터트리는 눈물

이미지: 부산국제영화제

올해 선댄스 최고 화제작 [패스트 라이브즈]도 부산에서 선을 보였다. 작품의 명성만큼이나 연일 매진 사례, 영화의 완성도 역시 오랜 기다림에 충분히 답해줬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린 시절 한국에서 함께 했던 두 친구가 24년 만에 뉴욕에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렇다. 이 작품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첫사랑 이야기다. 여기에 한국, 서울과 미국, 뉴욕 등 다른 곳에서 생활하는 인물의 여러 사정도 함께 깃들여 이야기의 입체감을 다진다.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지만 쉽게 만날 수 없는 환경적인 요인을 세심하게 빌드업한다.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감정들은 관객들을 더욱 영화에 빠지게 만든다.

24년만에 뉴욕에서 주인공들은 만나지만 극중 누군가는 이미 다른 사람의 반려자가 된 상황. 영화는 오히려 담담하게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를 꺼내며 인연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묻는다. [비포 선 라이즈]의 한 대목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감정의 무게감을 찬찬히 끌어올린 영화는 엔딩에서야 끝내 눈물을 터트린다. 영화의 여운이 굉장하다. GV현장에서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마지막을 보고 그냥 눈물이 나왔다”는 소감이 나왔을 정도다. 마치 영화는 놓쳤던 인연에 대한 후회보다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다독이는 듯하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부산에서 선을 보인 후 내년 상반기 국내 개봉예정이다. 많은 영화팬들이 이 작품과의 인연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에디터 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