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의 최대 축제 서울독립영화제가 오는 11월 30일 CGV 압구정에서 열린다. 올해도 전주, 부천, 부산에서 선을 보이며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부터, 이번에 처음으로 관객과 만날 신작까지, 2023년 독립영화를 총망라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듯하다.

서울독립영화제는 그동안 영화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작품들을 많이 소개했다. 올해 역시 어떤 영화들이 한국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지 많이 기대된다. 다가올 서울독립영화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그동안 여기서 발굴하거나 수상한 작품 중, 에디터들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최애작들을 소개해본다.

소셜포비아 – 독립영화에서 만나는 장르적 재미

2014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및 독립스타상 (변요한) 수상

이미지: KAFA FILMS

흔히 독립영화는 어렵고 지루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셜포비아]는 웬만한 상업 영화, 장르 영화 못지 않은 긴장감 넘치는 재미와 이야기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2014년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수상작인 [소셜포비아]는 사람들의 공분을 산 악플러를 벌하기 위해 뭉친 현피원정대가 현피 당일 싸늘한 시체가 된 악플러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소셜포비아]는 여러모로 오락적인 재미가 확실한 영화다. 한 악플러의 죽음을 다각도로 추격하는 서사부터,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활약과 비밀, 관객의 예상을 뒤집는 반전까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재미있는 것은 다 준비한 영화다. 여기에 트위터, 블로그, 스트리밍 등 러닝 타임 내내 화면을 가득 채우는 현란한 인터넷 세상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들 인터넷 방송 중계창의 댓글이나 트위터 맨션 등을 제작진이 실제로 대본을 적고 만든 것이라 남다른 디테일까지 느껴진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변요한, 이주승의 존재감도 눈에 띈다. 지금은 충무로의 대표배우로 성장한 두 배우의 초창기 모습을 만나는 것도 이 작품만의 매력. 두 배우는 경찰 지망생 지웅(변요한)과 용민(이주승)을 맡았는데, 장난으로 시작한 현피 원정대 활동이 감당할 수 없는 진실 공방으로 번지면서 혼란스러운 캐릭터의 감정을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특히 지웅 역을 맡은 변요한은 극의 주인공인 동시에 관찰자의 입장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사건의 진실을 지켜보며, 인터넷 전쟁으로 물든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의 논조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변요한, 이주승 외에도 지금보면 반가운 배우가 많다. 류준열이 극중 인기 BJ 양게로 나와 지금과는 완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한 순간도 쉬지 않는 속사포 드립과 오도방정을 떠는 캐릭터의 모습이 무거운 영화 분위기에 많은 웃음을 자아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독립영화 [경아의 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하윤경도 악플러 레나 역으로 출연했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현피원정대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두려움에 떠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하며, 마지막까지 영화의 미스터리에 빠져들게 한다.

[소셜포비아]는 2014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소개되었다. 내년이면 탄생 10주년이지만, 지금 봐도 너무 현실적이라 섬뜩하다. 그때보다 더욱 진화하고 무서워진 사이버 범죄, 상대를 말살하는 악플들과 인신 공격, SNS를 통한 사생활 침해까지. 이들 문제를 강력하게 비판하려고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현재까지도 악행은 반복된다는 점이 영화의 재미와 별개로 씁쓸하다. 어쩌면 드넓은 인터넷 세상 어딘 가에 [소셜포비아]는 픽션이 아닌 팩트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문제점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말이다. (에디터 홍선)

남매의 여름밤 – 당신의 일기장 속 무더웠던 그날의 추억

2019년 서욷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상 수상작

이미지 : 그린나래미디어(주)

[남매의 여름밤]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을 시작으로 제49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밝은미래상,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 및 여자 신인연기상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찬받은 역대급 웰메이드 독립영화다. 2019년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영화는 아빠와 함께 여름방학 동안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 옥주와 동주 남매, 그리고 한동안 못 만났던 고모까지 들어와 기억에 남을 온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혼과 별거로 아픔을 가진 이들이 모인 할아버지의 집은 아빠와 고모가 어린 시절부터 살았던 곳이다. 고목처럼 말없이 무뚝뚝한 할아버지의 그늘 속으로 한 여름의 햇빛을 피해, 어쩌면 각자의 문제에 힘들어하는 그들에게 그곳은 서늘한 바람과 열매를 내어주고 있었다.

[남매의 여름밤]의 ‘옥주’가 영화의 화자로써 이야기를 진행한다.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야 한다는 낯선 기분, 남자친구와의 관계, 이혼으로 따로 살고 있는 엄마에 대한 감정 등 사춘기 소녀의 복잡한 내면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관객들이 영화에 더욱 빠져들게 도와준다. 

영화는 누구나 겪었을 법한 소소한 일상들과 사춘기의 혼란과 실수를 할아버지 집이라는 옛날에 멈춘 듯한 공간과 함께 잔잔하게 전달한다. 마치 사춘기 때 쓴 일기장을 오랜만에 발견하여 읽어보는 느낌이다. 자극적인 내용은 없지만 평범한 일상이 더 공감 가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윤단비 감독은 첫 영화를 만들 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옮긴 탓에 섬세한 감정묘사나 그 시절의 분위기를 스크린에 녹여 낼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관객들은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방학을 보내던 추억, 사춘기 때 부모님께 반항하던 모습, 사소한 일로 동생과 투덕거리던 일 등을 떠올리며 각자의 공감대를 자극한다. 드라마틱한 무언가는 없지만 보고 나면 괜히 영화의 시작이 그립고, 마음이 아련하다. 어쩌면 이 작품 자체가 각박한 현실에 지친 어른들을 위한 짧은 여름방학이 아닐까? (에디터 보광)

소공녀 – 소공녀의 낭만 지키기

2017년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수상작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독립영화는 편견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표현으로 차별화된 경험을 전달하는 데 의미가 있다. 낡고 진부해서 술자리 이야깃거리조차 되지 않을 순간들을, 그런 사람과 일상들을 정성껏 카메라에 담아낸다. 아무런 미화 없이 어떤 진심을 툭 던져놓고 가 버리는데, 그것이 참 특별하고도 사랑스럽다. 더불어 정제되지 않은 투명함까지 느낄 수 있다. 모든 다이아몬드도 원석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독립영화의 이런 매력을 외면할 수 없다.

2017년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수상작 [소공녀]는 아주 사랑스러운 원석이다. 영화는 현대판 소공녀 ‘미소’(이솜)의 도시 하루살이를 그린다.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는 미소는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프로 가사도우미다. 좋아하는 것들이 비싸지는 세상에서 미소는 쿨하게 ‘집’을 포기하고 자발적 홈리스가 된다. 생존 대신 취향을 택한 미소는 “이게 그렇게 이상한 이야기인가?”라고 되묻는다.

아무래도 유니크한 미소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주 짠하면서도, 왠지 부럽다. 아주 안타까운데, 왠지 정말 부럽다.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도, 무식할 만큼 용감하다는 것도 모두 부럽다. 그러나 어떤 취향도, 어떤 사랑도 생존보다 우선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미소의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미소 또한 그 시선을 모르지 않는다. 소박한 행복 하나 지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세상이었나?

연출을 맡은 전고운 감독은 소확행, N포 세대, 플라시보 소비 등 2030 세대들의 씁쓸한 현실을 잘 반영했다. 비싼 집값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기 십상인 서울살이, 의문만 늘어가는 사회 구조와 그 모든 것을 감내하는 청춘들의 무거운 어깨가 모두 느껴진다. 거창한 볼거리가 없다는 것이 더 우리 이야기 같고, 미소는 주변에 꼭 하나 있는 예측되지 않는 친구 같다.

이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우스운 결말은 없다. 아마 미소는 추운 길 위에서, 작은 텐트 안에서, 허름한 술집에서 다시 이 겨울을 버티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위스키 한 잔을 지켜낼 것이고, 사랑 없는 곳에 사랑을 두고 올 테다. ‘낭만실조’라는 이 시대에 이런 독립영화가 주는 낭만은 값지다. (에디터 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