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청 블루 스케치](1986)라는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한 지 37년, 최근까지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허준호. 각양각색의 작품에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캐릭터들로 다양한 연령층에게 본인만의 독보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여기에 최근,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에서 CG 기술력으로 완성된 비주얼로 등장, 액션 연기까지 소화하면서 새로운 변신을 보여주며,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행보도 더욱 기대되는 배우다.

이번에는 임진왜란 발발 후 7년이 지난 시점에 이순신 장군의 최후 전투를 그린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로 돌아온다. 해당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과 호의적인 관계를 이루었던 인물 ‘등자룡’을 소화, 명나라를 대표하는 장수의 서사에 충실하게 임했다고 알려졌는데, 그래서 오늘은 배우 허준호의 연기 스펙트럼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강렬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영화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실미도](2003) ‘조돈일’ 역

이미지: 시네마서비스 ​

2003년에 개봉한 [실미도]는 배우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임원희가 주연을 맡아 1,10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천만영화’ 타이틀을 얻게 된 영화로, 당시 흥행과 함께 실제 실미도 사건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정도의 화제성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면서, 동시에 역사 속에서 지워지고 있었던 ‘실미도 사건’을 재조명한다.

배우 허준호는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는 인물이지만,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애쓰는 ‘조돈일 중사’ 역을 맡았다. 특수부대 648부대의 대원들의 최후를 목격하는 인물로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실제 허준호는 [실미도]에 두 번 캐스팅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부대원보다, 이들의 교관인 ‘조돈일 중사’ 역을 선택했다. 다시 제작이 확정되면서 비중은 줄었지만,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감정 변화를 직접 목격하면서 만족했다고 알려졌다. 이후, 해당 작품을 통해 제41회 대종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현재 [실미도]는 허준호의 필모그래피 상에서 유일한 천만 영화로, 그의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끼](2010) ‘류목형’ 역

이미지: CJ ENM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영화한 [이끼]는 배우 정재영, 박해일, 유준상, 유선, 허준호, 유해진, 김상호, 김준배가 주연을 맡아 극장에서 33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등급의 허들에도 꽤 많은 관객을 모았다. 영화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어느 시골 마을을 찾게 된 ‘류해국’이 자신을 이유 없이 경계하고 불편하게 여기던 이들과 함께 마을 생활을 이어가면서 벌어지는 작품이다.

허준호는 ‘류해국’의 아버지이자, 마을을 이끌어가는 이장 ‘천용덕’과 함께 해당 마을을 세웠던 인물 ‘류목형’ 역을 맡았다. 영화에서는 홀로 골방에서 죽은 인물로, 마을 사람들의 과거 행적에 주로 등장해 영화의 비밀을 조금씩 드러낸다. 다소 적은 분량에도 아들인 ‘해국’ 박해일이 의문을 품는 시선에서 그려지는 ‘목형’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다.

이후, 허준호는 약 10년 뒤에 개봉한 영화 [결백](2020)에서도 한 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의 진실을 숨기려는 듯한 인물 ‘추인회’ 역을 맡았다. [이끼]와는 닮은 듯 다른 연기로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극한 것이 또 다른 포인트.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던 [이끼]와 달리, 사건을 의문스럽게 만드는 인물로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국가부도의 날](2018) ‘한갑수’ 역

이미지: CJ ENM

2018년에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은 한국 영화 최초, 1997년에 발생했던 외환 위기를 소재로 한작품이다.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이 일주일뿐인 상황,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려는 사람, 그리고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치열했던 순간을 담았다.

허준호는 경제위기에 직격탄을 맞게 되어버린 회사, 그로 인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가장 ‘갑수’ 역을 맡았다. 영화에 출연하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평범한 인물로, 위기에 처한 회사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위태로운 캐릭터를 소화했다. 허준호하면 강하고 선 굵은 모습 이 보통인데, 이 작품만큼은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사람의 표정을 공감가게 연기했다. 그만큼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은 평범한 가장의 감정 표현이 돋보이는데, 현실을 비관하며 삶을 마감하려는 인물의 슬픔까지 인상 깊게 표현했다. 어쩌면 IMF때 우리네 모습을 가장 현실감 있게 그려낸 연기가 아닐까 싶다.

[모가디슈](2021) ‘림용수’ 역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2021년에 개봉한 [모가디슈]는 코로나-19로 인한 극장의 침체기에도 361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한국영화의 진정한 힘을 보여준 작품이다. 영화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발생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린다.

허준호는 소말리아에서 외교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소말리아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 북한 대사 ‘림용수’ 역을 맡았다. 신경전을 펼치던 대한민국 대사관의 사람들과 함께 생존하기 위해 애쓰는 북한 대사관의 수장을 연기했다. 때로는 서로를 의심하는 모습을 그려내다가, 후반부에 들어서는 모두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물을 연기해 극의 메시지와 감동을 책임졌다. 그만큼 관객들이 집중하고, 감정적으로 따라가게 할 대표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허준호는 [모가디슈]의 대본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오직 류승완 감독에대한 신뢰로 그런 결심을 했다고.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그의 필모에서 빛나는 순간으로 다가왔다. 청룡영화상과 부일영화상을 포함해 여러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 허준호에게는 [실미도] 다음으로 많은 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남았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2023) ‘범천’ 역

이미지: CJ ENM

최근 개봉한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에서도 허준호의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영화는 귀신을 믿지는 않지만, 귀신과도 같은 통찰력을 지닌 가짜 퇴마사 ‘천박사’가 진짜 사건을 의뢰받으며 법사 ‘범천’에 맞서게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렸다.

허준호는 신령이 되겠다는 목표를 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당들을 사냥해 영력을 모으는 법사 ‘범천’을 연기했다. 극 중에서는 주인공 ‘천박사’의 대척점에 놓인 인물로, 타인에게 빙의한다는 설정과 쇠사슬에 묶인 순간, 그리고 자신을 막아서는 이들에 맞서는 액션을 한 작품에서 모두 소화하였다. 사람이 아닌 악귀와도 같은 비주얼로 등장해 이전에 소화했던 캐릭터들과는 다른 느낌,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는 것도 포인트다. 이전까지 소화하지 않았던 액션이 주가 되는 캐릭터임에도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욕망을 지닌 인물의 얼굴도 디테일하게 만들어 작품의 재미를 책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