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기억을 가지고 1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상상,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다. 이를 소재로 한 ‘회귀물’은 지난 몇 년 동안 웹툰/웹소설계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어느덧 TV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됐다.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회귀물의 문법에 충실히 따르는 동시에, 다양한 재미를 맛깔나게 버무리면서 보는 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선사하고 있다.

이미지: 넷플릭스

강지원(박민영)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말기 암 선고를 받았고, 남편 박민환(이이경)과 유일한 친구라 믿었던 정수민(송하윤)은 불륜 관계였다. 설상가상 두 사람이 함께 있던 현장을 목격한 날, 민환에게 목숨까지 잃고 말았다. 하지만 기적이라도 일어난 걸까? 지원이 마주한 건 놀랍게도 사후세계가 아닌, 10년 전 자신의 모습이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생 2회 차’의 시점에서 보니 이전엔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환의 폭력, 수민의 가스라이팅은 물론 회사에서의 불합리한 대우 등등. 살아생전 자신이 어떠한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깨달은 지원은 이내 결심한다. 시궁창과 같았던 자신의 운명을 돌려주기로 말이다.

현재까지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회귀물은 물론이고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지원이 지난 생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거머쥐는 과정은 뻔해도 흥미진진하다. 현재의 기억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재력을 축적하는 장면은 회귀물의 정석이자 누구나 한 번쯤 상상했던 것이기에 대리만족감이 느껴진다. 민환과 수민을 결혼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과정은 치정/복수극의 매력이, 또 강지원과 유지혁(나인우), 백은호(이기광) 사이에서 꽃피는 로맨스의 풋풋함까지 더해졌다. 여기에 이야기 전개가 상당히 빠르기까지 하니, 보는 내내 심심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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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다름아닌 강지원의 성장 서사다. 지원이 과거로 회귀해 이런저런 성공을 맛보긴 했어도, 근본적인 문제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민환과는 ‘공식적인’ 사내 커플이고, 무능한 상사의 괴롭힘과 수민의 가스라이팅은 쉴 새 없이 지원을 압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원의 선택에 눈이 간다. 누군가에게 의지만 하던 과거가 떠올랐기에, 이번에는 ‘백마 탄 왕자님’과 같은 지혁이 있음에도 스스로 극복하기로 한다. 항상 위축되고 남에게 빼앗기기만 하던 지원이 점차 성장하는 과정은 보는 이들에게 위로와 통쾌함을 안겨준다.

배우들의 퍼포먼스는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박민영은 과거 위축된 삶을 살았던 ‘전생의 강지원’과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는 ‘인생 2회 차 강지원’을 훌륭한 연기와 비주얼로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과거의 지원을 연기하기 위해 극도의 체중감량을 한 점 또한 박수받아 마땅하다. 박민영과 호흡을 맞춘 나인우는 ‘회귀의 비밀’을 감춘 채 뒤에서 묵묵히 지원에게 힘이 되어주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유지혁 역할과 찰떡이다. 이이경과 송하윤 역시 극의 메인 빌런으로 분하며 매회 고구마를 선사하는 중인데, 둘이 등장할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 걸 보니 두말할 것도 없이 완벽하게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할 수 있다.

다만 호불호의 영역은 분명 존재한다. 추후 완성될 지원의 복수가 안겨줄 카타르시스를 위해서라고는 하나, 악역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보는 이에 따라선 꽤나 거부감을 유발하는 편이다. 회귀물, 로맨스, 복수극 등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반면, 지원의 성장 서사를 제외하면 아직까지는 해당 장르에서 자주 접한 구도와 클리셰 때문에 작품이 진부하게 다가올 여지도 있다. 다소 어색한 부산 사투리 또한 약간의 진입장벽이라면 진입장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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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방영된 6회는 지원이 지혁으로부터 자신 역시 미래에서 회귀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으며 마무리됐다. 과연 두 사람은 스스로 끔찍했던 운명을 바꾸고 복수와 사랑을 거머쥘 수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아 젠장, 꿈이었잖아’ 엔딩만큼은 아니길 바란다. 예전에 한 번 뒤통수를 너무 세게 맞았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