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뛰어난 영화감독도 내놓는 모든 작품을 흥행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어려운 걸 해내는, 이른바 할리우드에서 ‘믿고 맡기는’ 연출자들이 있다. 작품성을 떠나 이들의 영화는 관객을 사로잡을 만한 분명한 강점을 가지고 있기에 짧게는 몇 년, 길게는 30년 가까이 카메라를 잡고 있는 것이다(물론 작품성과 티켓파워를 겸비한 흔치 않은 경우도 있다). 흥행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젊은(?) 감독들을 소개한다. (선정 기준: 흥행률 80% 이상, 1990년대 전후로 활동을 시작한 감독)

1. 마이클 베이

이미지: Paramount Picture

북미/전 세계 흥행 순위: #2 / #5
대표작: [나쁜 녀석들 1 & 2], [더 록], [아마겟돈], [진주만], [트랜스포머] 시리즈, [6 언더그라운드]
박스오피스 누적: $6,443,668,115
흥행률: 85.7% (12/14)
최고 흥행작: [트랜스포머 3], $1,123,794,079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마이클 베이의 티켓파워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북미에선 스티븐 스필버그를 제외하면 마이클 베이보다 높은 흥행 성적을 거둔 이가 전무하고, 전 세계로 눈을 돌려도 스필버그와 루소 형제, 피터 잭슨만이 그의 앞에 있기 때문이다. 성적 집계가 어려운 넷플릭스 [6 언더그라운드]를 포함한 14편의 영화로 전 세계에서 64억 4,000만 달러를 쓸어담았으니, 작품 평균 수익이 4억 5,000만 달러에 달하는 셈이다. [트랜스포머 3] 이후 ‘베이햄(bay+mayhem)’이라 불리는 특유의 연출 방식이 장점이 아닌 단점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가 ‘최고의 흥행 감독’ 중 하나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 피터 잭슨

이미지: Warner Bros.

북미/전 세계 흥행 순위: #6 / #4
박스오피스 누적: $6,546,042,615
대표작: [반지의 제왕] 삼부작, [호빗] 삼부작, [킹콩], [데드 얼라이브]
흥행률: 91.6% (11/12)
최고 흥행작: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1,140,682,011

워너브러더스가 [반지의 제왕] 삼부작의 감독으로 피터 잭슨을 지목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칸이나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초청될 정도로 전도유망한 감독이긴 했으나 당시 피터 잭슨의 장기는 ‘B급 슬래셔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터 잭슨은 2001년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로 우려를 씻어낸 데 이어 두 속편까지 엄청난 흥행은 물론, 수많은 트로피까지 거머쥐며 워너 브러더스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이후 본인의 오랜 꿈이었던 [킹콩]과 [반지의 제왕] 프리퀄인 [호빗] 삼부작을 연출해 자신의 전 세계 박스오피스 성적을 65억 달러로 끌어올리며 명실상부한 흥행 감독 반열에 올랐다.

3. 크리스토퍼 놀란

이미지: Warner Bros.

북미/전 세계 흥행 순위: #9 / #8
박스오피스 누적: $4,731,737,532
대표작: [메멘토], [다크 나이트] 삼부작,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흥행률: 100% (10/10)
최고 흥행작: [다크 나이트 라이즈], $1,081,041,287

크리스토퍼 놀란처럼 꾸준하게 평단과 관객에게 사랑받는 감독도 드물다. 장편 연출 데뷔작 [미행]부터 [덩케르크]까지 로튼 토마토에서 소위 ‘썩토’를 받은 작품은 단 한 편도 없으며, 2008년 [다크 나이트] 이후로는 전 세계 흥행 5억 달러 밑으로 떨어진 영화도 없다(이전 연출작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뿐만 아니라 IMAX 카메라를 상업 영화에 최초로 도입해 영화사에 새 지평을 열기까지 했으니, 괜히 워너 브러더스에서 놀란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수많은 영화인들이 ‘오늘날 할리우드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감독’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올 7월 개봉을 앞둔 [테넷]을 포함해 크리스토퍼 놀란의 차기작들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4. 제임스 완

이미지: Lions Gate Films

북미/전 세계 흥행 순위: #35 / #20
박스오피스 누적: $3,657,623,985
대표작: [쏘우], [인시디어스 1 & 2], [컨저링 1 & 2],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아쿠아맨]
흥행률: 85.6% (6/7)
최고 흥행작: [분노의 질주: 더 세븐], $1,518,722,794

제임스 완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시아계 감독이다. 연출 데뷔작 [쏘우]를 비롯해 [인시디어스] 시리즈와 ‘컨저링 유니버스’라는 성공적인 호러 프랜차이즈를 탄생시킨 만큼, 제임스 완을 단순히 공포 영화 감독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임스 완은 [분노의 질주: 더 세븐]과 [아쿠아맨]으로 대형 블록버스터 연출에도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했는데, 두 작품으로 벌어들인 금액이 전체 흥행 성적의 70%에 달하는 26억 달러다. 반대로 말하면 다섯 편의 공포 영화로 10억 달러를 벌어들인 셈인데, 이들의 제작비를 다 합쳐봐야 6,000만 달러 중후반대임을 감안하면 이건 이것대로 대단한 기록이다.

5. J.J. 에이브럼스

이미지: Lucasfilm

북미/전 세계 흥행 순위: #5 / #9
박스오피스 누적: $4,653,946,342
대표작: [미션 임파서블 3], [스타트렉: 더 비기닝], [스타트렉 다크니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슈퍼 에이트]
흥행률: 100% (6/6)
최고 흥행작: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2,068,223,624

J.J. 에이브럼스는 다른 건 몰라도 흥행만큼은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는 감독이다. 여섯 편의 연출작 모두 흥행시킨 건 물론, 이들로 거둬들인 전 세계 성적이 무려 46억 5,000만 달러를 넘는다는 것만 봐도 그의 티켓파워를 알 수 있다. 아무래도 감독 데뷔 전 TV 시리즈 제작자와 각본가로 활동한 이력이 큰 도움이 된 모양이다. 떡밥을 투척해놓고 정작 회수하지 못하는 특유의 스타일과 자신만의 독창성이 부족해 과하게 오마주를 사용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고 있지만,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쌍제이 연출작’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꾸준히 기용되겠지만.

6. 안소니 & 조 루소

이미지: Marvel Studios

북미/전 세계 흥행 순위: #3 / #2 (공동)
박스오피스 누적: $6,844,248,566
대표작: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
흥행률: 83.3% (5/6)
최고 흥행작: [어벤져스: 엔드게임], $2,797,800,564

안소니와 조 루소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질 형제 감독이다. 두 사람의 MCU 연출 데뷔작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프랜차이즈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았으며,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아바타]가 10년 간 지키던 전 세계 흥행 1위 기록을 새로이 쓰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사실상 네 편의 마블 영화로 5년 사이에 67억 달러를 벌어들인 셈이다. 물론 캐릭터 설정과 액션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루소 형제의 능력이 뛰어났기에 이러한 성적표를 받은 것이겠지만, 연출 경력이 TV 시리즈 [커뮤니티]와 몇몇 코미디, 소규모 영화에 불과했던 두 사람을 MCU에 합류시킨 마블 스튜디오의 안목도 대단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