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과 장르 마니아를 위한 이번주 개봉작”

 

세상은 넓고 볼 영화는 많다. 매주 새로운 영화들이 물밀듯이 극장가를 찾아오지만 모든 개봉작들을 보기에는 시간도 없고 지갑 사정도 여의치 않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시간과 여유가 있어도 보고 싶은 영화가 근처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참사를 겪으면서 VOD 출시만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씨네필 혹은 특정 장르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한 이번 주 개봉작들을 소개한다.

 

1.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Crazy Rich Asians)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에디터 띵양: 한국 드라마에서 자극적인 ‘막장’을 덜고 ‘웃음’과 ‘자금’을 더한 느낌.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여성과 싱가포르 최대 재벌가 아들의 사랑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할리우드식 로맨틱 코미디랑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출생의 비밀’이나 ‘고부갈등’, ‘가족주의’ 등의 동양적인 요소가 더해지면서 우리에게는 친숙한, 그러나 서구권 관객에게는 신선한 아시아 로맨틱 코미디로 탈바꿈하게 된다. 영화는 장르의 기본적인 요소를 갖춘 동시에 뼈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소비되었던 동양인의 이미지-중산층, 가게 주인, 너드, 어색한 영어 발음-를 뒤엎어버린다거나 돈 밖에 모르는 졸부의 행실을 풍자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과정에서 허투루 쓰이는 캐릭터 하나 없이 모두가 빛나는 존재감을 보이니,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단점을 꼽기가 힘들 정도다. 웃음과 감동, 메시지까지 선사하는 흔치 않은 로맨틱 코미디기에 얼른 가서 표를 예매하기를 권장한다.

 

 

2. 풀잎들 (Grass)

이미지: (주)영화제작전원사

 

에디터 Jacinta: [풀잎들]은 그 어느 때보다 단순하고 명료하다. 두 인물 사이의 거리를 옮겨 다닐 뿐 거의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흑백 영상 속에 각자 사연 있는 사람들은 특유의 사소하거나 별 볼 일 없는 대화를 주고받고, 예의 익숙한 뻔뻔한 캐릭터도 등장한다. 늘 그렇듯 홍상수 월드의 동어반복이 미묘한 힘을 발하는 영화다. 그런데 이전과 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한동안 감독 개인의 삶에서 파생된 파편들이 인물들이 내뱉는 말과 행동에 오르락 내리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면, 이번 영화는 삶을 달관하는 관조적인 시선이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항변과 변명으로 둘러싼 세계에서 벗어나,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생명력을 잃지 않는 ‘풀잎들’처럼, 희비극을 오가는 찰나의 순간은 점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중심은 이전 영화와 달리 관찰자로 나선 김민희다. 카페를 찾은 손님들을 훔쳐보며 감정을 읊조리는 김민희의 내레이션은 사랑과 죽음, 관계, 감정 등을 돌아보게 하는 신비로운 힘이 담겨 있다. 삶을 성찰하고 사유하는 감독의 변화가 감지되는 영화.

 

 

3. 필름스타 인 리버풀  (Film Stars Don’t Die in Liverpool)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주)

 

에디터 겨울달: 전성기가 지난 배우와 배우 지망생의 마지막 사랑 이야기. 나이 차이, 경력 차이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을 영국 로맨스 드라마 특유의 감성으로 그린다. 이쯤 되면 나올 법한 “부모와 가족의 반대” 같은 건 없다. 가족과 친구들의 지지 아래 두 사람의 사랑에 온전히 집중한다. (한국 드라마의 갈등 전개에 익숙한 에디터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화 바탕이기 때문에 결말은 이미 다 나와 있지만, 그래서 대륙을 오가며 열렬히 사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마음이 더 짠하다. 글로리아 그레이엄을 훌륭하게 소화한 아네트 베닝은 우아하고 사랑스럽다. 첫 로맨스 영화에 도전한 제이미 벨은 사랑 앞에 당당한 청년을 멋지게 그린다. 가을을 맞아 지치고 힘든 분들께 추천한다. 메마르고 거친 감성을 촉촉하게 적실 것이다.

 

 

4. 프리다의 그해 여름 (Summer 1993)

이미지: (주)디스테이션

 

에디터 Amy: 아픈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여섯 살 어린아이 프리다는 한창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하는 나이에 시골 외삼촌 부부에게 맡겨진다. 외삼촌 부부와 사촌 동생 아나는 프리다를 따뜻하게 맞아주지만, 넘기 힘든 벽이 있다는 걸 느낀 프리다가 자신을 사랑해줄 가족을 찾기 위해 떠나려 하는 과정을 그린다. 말썽도 피우고 아나에게 질투도 느끼지만, 프리다는 아직 어린아이이기에 닥친 일을 받아들이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서툴 뿐이다. 이 영화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그리며 아이의 심리를 훌륭하게 담아낸다. 특히 프리다와 아나 역인 아역배우 라이아 아르티가스와 파울라 로블레스의 연기가 정말 놀랍다. 잔잔한 영상미와 따뜻한 성장 서사를 관람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5. 엘 마르 (Between Sea and Land)

이미지: (주)영화사 그램

 

에디터 겨울달: 희귀병으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청년 알베르토와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어머니 로사의 이야기. 창밖 푸른 하늘과 작은 거울 속 세상에 만족했던 알베르토는 누군가를 자유롭게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을 깨달은 후 바다에 가길 소원하고, 어머니는 풍족하지 않아도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엘 마르]는 바다나 하늘을 닮아 푸르고 아름답지만, 그래서 매 순간마다 마음이 아프다. 결국 생존과 삶 중 자신을 위해 최선을 선택한 알베르토의 슬픔과 아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알면서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공감, 연민, 슬픔 등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평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잘 울지 않는 에디터마저 훌쩍이며 나왔다. 기대 이상의 감동으로 언제 눈물을 쏟을지 모르니, 손수건은 필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