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코로나19로 주춤했던 영화관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아늑한 집에서 쉽고 간편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지만, 스크린으로 봐야만 진가가 드러나는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TV 모니터가 다 담을 수 없는 이 작품들은 주로 독특한 색감과 감각적인 디자인의 영상미를 자랑한다.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들에게 ‘미술상’을 수상하며 그 공로를 인정해왔다.

2023년 3월에 진행될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미술상 후보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아바타: 물의 길], [바빌론], [엘비스], [파벨만스]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수상에 성공했다. 그 이전에는 어떤 작품들이 시각적 황홀함을 선사해 왔는지 살펴보려 한다. 시대상을 잘 반영한 세트, 시공을 초월하는 분장과 시각 효과,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미까지, 연대별로 다채롭게 담아 보았다.

아마데우스(1984)

이미지: 사울 자엔츠 컴퍼니

천재를 시기한 평범한 궁정음악가의 질투에서 시작된, 광기에 찬 파멸의 서곡을 그린 [아마데우스]. 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그의 천재성을 평생 시기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로, 피터 쉐퍼가 쓴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했다. 음악 영화계의 대표적인 걸작이자 영화사에 남을 사극 작품 중 한 편이다.

제57회 아카데미 미술상 수상작인 [아마데우스]의 가장 큰 볼거리는 18세기 오페라 무대를 충실히 재현한 화려한 세트와 의상이다. 웅장한 저택과 연주회장, 위엄 있는 분장과 스타일을 클래식 속에 녹여, 우아함과 자유분방함을 노련하게 뒤섞어 놓았다. 이 덕분에 [아마데우스]는 미술상,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타이타닉(1997)

이미지: 20세기 폭스

타이타닉호의 실제 침몰 사고를 바탕으로 두 남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 [타이타닉].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선사하는 가슴 벅찬 러브스토리로, 배우들의 연기와 영상미가 훌륭하게 어우러진 명작이다. 화려한 영상미와 섬세한 스토리로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고 아카데미 최다 11개 부문 수상, 전 세계 박스오피스 18억 달러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재개봉 수익을 포함하면 22억 5천만 달러). 제임스 카메론의 완벽주의적인 광기가 이번에도 인정받은 것이다.

[타이타닉]이 제70회 아카데미 미술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전례 없는 시각 효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한 후, 둘로 갈라져 북대서양 차가운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또한 샹들리에와 접시마저도 실제 타이타닉호와 똑같은 복제품을 고를 만큼 연출과 구성이 디테일했다. 2023년에는 국내에서 리마스터링 재개봉하였고, 역대 대한민국 재개봉 흥행 1위라는 기록을 세우며 다시금 명작의 힘을 과시하였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이미지: 워너 브라더스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가는 남자의 인생을 그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 난해하고 심오한 이야기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비범하고도 보편적인 감성으로 영화화했다.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벤자민을 통해, 인간이 인생을 순리대로 살든 거꾸로 살든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차이가 없다는 진리를 말한다.

제81회 아카데미 미술상 수상작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역노화 현상’을 완벽하게 보여준 CG와 특수분장 측면에서 찬사를 얻었다. 노인에서 청년으로 변모해가는 브래드 피트의 외모를 통해, 디지털 기술의 놀라운 발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평이었다. 또한 20세기를 풍미한 시대별 아이콘들의 스타일을 참고한 의상, 제1차 세계대전부터 이어지는 시대별 변천이 시각적 놀라움을 선사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이미지: 아메리칸 임페리컬 픽처스

세계 최고 부호 ‘마담 D.’의 죽음을 둘러싸고, 세계적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와 로비 보이 ‘제로’의 기상천외한 여정을 그린 미스터리 어드벤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미학의 대가’ 웨스 앤더슨은 파시즘과 공산주의, 대학살과 전쟁 이전 ‘아름다운 시절’의 동유럽을 회상하며 ‘예술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시대’였다고 말했다. 그 짙은 향수에 특유의 기발함과 재치를 더하여, 환상과 낭만이 살아 숨 쉬는 나라 ‘주브로브카 공화국’을 만들어낸 것이다.

제87회 아카데미 미술상을 수상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웨스 앤더슨의 개성과 감각으로 무장한 작품이다. 또한 1960년대는 와이드 스크린으로, 1930년대는 1.37:1, 최근에 가장 가까울수록 1.85:1 등 당대 유행했던 화면비율로 촬영하는 완벽주의적인 면모까지 선보인다. 화려한 비주얼과 색감 속에 향수, 케이크, 조명, 악세사리 같은 작은 소품들을 차용하며 빈티지한 매력을 더했고, 이는 SNS 유저들의 키치한 취향까지도 저격했다. 그야말로 아트버스터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작품이었다.

듄(2021)

이미지: 레전더리 픽처스

위대한 운명을 예언 받으며 태어난 폴이 가족과 백성들을 위해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행성으로 모험을 떠나는 [듄]. 악의 세력과 투쟁하는 신화적이고 감동적인 영웅의 여정을 담은 [듄]은 프랭크 허버트의 SF 대하소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다. 1984년 데이비드 린치 감독에 의해 최초로 영화화되었으며(린치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지 못했다며 본인 영화로 치지 않지만), 2021년 드니 빌뇌브 감독이 다시 한번 영화화했다. 드니 빌뇌브의 [듄]은 보다 장엄하고 신비로운 세계관을 특징으로 한다. 주연은 티모시 샬라메로, 84년작 카일 맥라클라 버전의 폴과 유사한 외형을 보여준다.

제87회 아카데미 미술상을 수상한 [듄]의 배경은 10191년이다. 상상조차 되지 않는 멀고 먼 미지의 세계이다. 드니 빌뇌브가 그려낸 10191년은 삭막한 폐허의 세계로, 인간은 바람과 모래, 사막에 맞서 오로지 자신의 두려움과 싸워나간다. 과하지 않은 시각효과와 액션, 매끄러운 영상미가 몰입도를 더한다. 전체적으로 84년작에 못지않은 완성도와 작품성을 보여줬다는 평이 이어진다. 2023년 가을에 파트 2가 개봉될 예정인데, 파트 1에서 보여준 영상미와 웅장한 스토리 그 이상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