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계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숨고르기에 들어간 사이, 할리우드에서는 베니스 영화제와 텔룰라이드 영화제가 열리며 본격적인 시상식 시즌이 시작됐다. 올해 아카데미를 향한 여정에 어떤 영화가 탑승할지 궁금해진다. 약 3주 남은 에미상 시상식도 슬슬 화제몰이 중이다. #미투 운동이 활발해진 이후 처음으로 열리게 되는데, 업계 문화의 변화가 시상식 결과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그 외 공식석상 인터뷰가 많았던 한주 동안 어떤 말이 할리우드를 들썩이게 했는지 살펴본다.

정치적 선언이 아니다.
– 데이미언 셔젤
출처: UPI코리아

75회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 [퍼스트 맨]은 1969년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인 닐 암스트롱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라라랜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2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다 아는 우주인 암스트롱의 다른 모습에 집중하며 주목받았는데, 정작 상영 이후 예상치 못한 점이 화제가 됐다. 바로 달 착륙의 가장 상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는 순간,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성조기를 꽂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주연배우 라이언 고슬링이 이에 대해 “닐 암스트롱은 자신을 미국의 영웅으로 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발언하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보수 성향인 마이클 루비오 미 상원의원은 “미국의 기술과 자본이 로켓을 만들었고 미국인 우주비행사가 참여했다. UN 작전이 아니었다.”라고 비판했고, 이에 동조한 사람들이 영화가 ‘반미(anti-american)’적이라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셔젤은 성명을 발표해 자신이 그 장면을 넣지 않은 이유를 직접 설명했다. 그는 성조기를 꽂는 장면에 집중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정치적 선언이 아니며, 달 착륙 작전에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특히 닐 암스트롱의 개인사와 달 표면에서 그가 보낸 몇 시간에 집중하려 했다고 밝혔다. 또한 암스트롱의 업적은 미국 역사상 뛰어난 성취일 뿐 아니라, 인류사의 뛰어난 성취이며, 영웅의 이면을 좀 더 깊게 파고듦으로써 그 순간이 얼마나 어렵고, 장엄하고, 영웅적인지 보여주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암스트롱의 아들인 릭, 마크 암스트롱과 원작 전기 작가 제임스 R. 핸슨 또한 따로 성명을 발표해 셔젤의 선택을 지지했다.

출처: Deadline

어두운 주제를 다루다 보면 감정이 남을 때가 있다.
– 다코타 존슨
출처: 더쿱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서스페리아]도 베니스영화제에서 공개됐다. 이탈리아 호러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예고편과 포스터부터 으스스하고 유혈이 낭자할 것임을 예고하며 기대를 모았다. 특히 주연배우 다코타 존슨이 이 영화를 찍은 후 “심리상담가와 상담까지 했다.”라고 말한 게 화제가 됐는데, 상영 후 기자회견장에서 틸다 스윈튼이 “영화를 본 후 불안한 감정을 느낀다면 상담을 받으세요.”라고 농담하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존슨은 “심리분석을 받은 건 아니다.”라고 자신의 발언을 명확히 했다. 그는 “어두운 주제를 다룬 영화를 하면 촬영이 끝나도 그 감정이 남게 되는데, 가끔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정을 풀어간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영화의 경험 자체는 큰 충격이 아니었다. 정말 신나고 재미있었으며 모든 순간이 좋았다.”라고 덧붙였다. 존슨이 심리상담까지 받을 만큼 몰입한 [서스페리아]는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며 올해의 화제작이 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출처: Deadline

인공적인 얼굴은 안돼요.
– 브래들리 쿠퍼
출처: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베니스영화제의 또 다른 화제작은 [스타 이즈 본]이다. 1937년 영화의 세 번째 리메이크 작품으로, 브래들리 쿠퍼의 장편영화 감독 데뷔작이자 레이디 가가의 첫 장편영화 주연작으로 주목받았다. 최근 가가가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쿠퍼가 가가의 메이크업을 지운 게 밝혀지며 화제가 됐다. 가가는 베니스영화제 기자회견장에서 그날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그는 “집 계단을 내려오며 브래들리를 봤는데, 손에 클렌징 티슈를 들고 있었다. 내 얼굴에 손을 대고 (위에서 아래로) 이렇게 닦아내니 메이크업이 묻어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평소 진한 메이크업으로 유명한 가가는 그날 스크린 테스트 때문에 연하게 화장을 했지만, 쿠퍼는 “얼굴에 메이크업에 전혀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고. 가가는 쿠퍼가 그렇게 자신의 연약함을 끄집어냈고, 덕분에 재능은 뛰어나지만 외모가 부정적 평가를 받는 앨리 역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언제나 배우가 되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100명 중 99명이 날 믿지 않아도 한 사람만 믿어주면 되는데, 내게는 브래들리가 그런 사람이다. 난 정말 행운아다.”라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스타 이즈 본]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으며, 특히 레이디 가가의 연기와 브래들리 쿠퍼의 연출, 음악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다른 방식도 중요하다.
– 코엔 형제
출처: 넷플릭스

코엔 형제의 신작 [더 발라드 오브 버스터 스크럭스]도 베니스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다. 코엔 형제가 처음으로 넷플릭스와 손잡은 작품으로, TV 시리즈라는 예상을 깨고 2시간 12분 분량의 앤솔로지 서부극으로 밝혀져 화제가 됐다. 코엔 형제는 기자회견장에서 “각본을 쓰는 데 25년이 걸렸”으며, 원래 TV 시리즈로 구상했지만 결국 영화로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형제는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한 이유를 “60, 70년대엔 앤솔로지 영화가 많았지만 이제는 누구도 만들지 않는다. 이걸 되살리는 게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형제는 또한 넷플릭스의 지원을 환영했다고 밝혔다. 그들은 넷플릭스나 아마존처럼 “주류에서 벗어난 영화에 자본을 대고 영화를 만드는 회사가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그게 예술을 살아있게 한다.”라고 말하며 “더 많을수록 좋다.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 산업을 더 건강하게 한다.”라고 덧붙였다. [발라드 오브 버스터 스크럭스]는 11월 16일 넷플릭스에 공개되는데, 코엔 형제는 미국 극장 개봉도 계획이 잡혀 있다고 밝혔다.

출처: Deadline

우리 작품은 더럽지 않다.
– 로빈 라이트
출처: 넷플릭스

11월 최종 시즌 공개를 앞둔 [하우스 오브 카드]가 제작 취소 운명을 맞을 뻔한 사실이 공개됐다. 로빈 라이트는 최근 네타포르테와의 인터뷰에서 케빈 스페이시 성폭력 사건과 해고 이후 [하우스 오브 카드]가 캔슬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고 밝혔다. 라이트는 하비 와인스틴이나 스페이시 사건 때문에 “당시 분위기가 정말 심각했다.”라고 회상하며, “사람들이 취소하지 않으면 우리가 매우 더러운 작품을 미화하거나 떠받든다고 볼 것이라 말했다.”라며 당시의 암울한 분위기를 묘사했다. 라이트는 그 말에 “우리 작품은 더럽지 않다.”라고 대응했고, 마지막 시즌이 제작될 수 있도록 넷플릭스 임원진들에 “우리가 그동안 했던 헌신과 드라마를 사랑한 사람들을 위해서 계속해야 한다.”라고 설득했다. 라이트는 갑자기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도 염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서 ’단지’ 600명 정도만 실직한다.”라고 했지만, 로케이션 촬영장인 볼티모어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모두 2500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었다.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부당한 처사라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출처: Net-a-Porter

빈지와칭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했어요.
– 가이 피어스
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영상 콘텐츠 시청 방식에 혁신을 가져왔지만,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역시 몰아보기, 빈지와칭(Binge-watching)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표현을 널리 알린 넷플릭스는 그 단어를 싫어하는 듯하다. 가이 피어스가 [이노센트: 순수의 여정] 홍보를 위한 엠파이어 매거진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작품이 빈지와칭하기 괜찮은 드라마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은 그 단어를 쓰면 안 됐었다.”라고 밝혔다. 피어스는 “넷플릭스가 ‘Binge’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 같다.”라며, [이노센트]의 미국 홍보 당시 넷플릭스 측에서 인터뷰에선 그 단어를 절대 쓰면 안 된다는 지시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피어스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그런 지시가 나온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Binge’가 폭음, 폭식 등 부정적인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된다.

출처: Empire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