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알렉스는 남편 숀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늦은 밤에 딸 매디와 함께 집을 나온다. 그러나 숀이 가한 폭력은 물리적인 것이 아닌, 정서적인 학대에 가까워 알렉스와 그의 딸은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옥으로부터 도망쳤다고 생각했던 알렉스는 그보다 더한 비참한 현실을 마주한다. 위태로웠던 집에서의 생활과 다르지 않은 바깥세상에서, 알렉스는 딸 매디와 함께 작은 희망을 마주할 수 있을까. [조용한 희망]은 가난과 폭력이 대물림되는 순간들을 포착하며, 한 여인이 싱글맘으로서 독립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폭력의 정의는 무엇인가

이미지: 넷플릭스

[조용한 희망]의 원제는 [MAID]다. 딸 매디와 함께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려는 알렉스가 택한 직업이 MAID, 즉 가사 도우미이기 때문이다. 집을 탈출해 남편의 손아귀에서는 벗어난 알렉스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복지사를 찾아가지만, 그가 신체적 폭력을 당하지 않았기에 사회가 제공하는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답변만 듣는다. 드라마는 여기서 ‘폭력의 정의는 무엇일까’라며 되묻는다. 알렉스가 숀에게 받은 학대 역시 폭력이 분명하지만,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쉽게 입증하기 힘들며, 사회는 그 같은 현실을 외면한다. 이야기는 시작부터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제도적인 문제점을 꼬집는다.

작은 여유조차 없는 삶, 가난의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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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홈리스 생활을 택한 알렉스는 홀로 생계를 꾸리고, 딸 매디를 책임지며 고단한 현실에 맞선다. 곰팡이가 가득한 노숙인 쉼터에서 생활하다 보니 딸 매디는 고열에 시달리고, 이러한 환경 때문에 남편 숀과의 양육권 분쟁도 점차 불리해진다. 잠깐의 여유조차 사치라고 생각하며 일하지만, 정작 돈은 모이지 않는 아이러니는 계속된다. 드라마는 알렉스가 일상에서 돈을 소비할 때,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화면에 띄우며 그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드러낸다.

알렉스가 부모로부터 대물림받은 것은 가난과 폭력이었다. 그는 딸에게 절망적인 현실을 물려주기 싫어 애쓰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트라우마와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지금의 노력을 방해한다. 남편 숀 또한 자신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왔음을 보여주면서 드라마의 갈등은 다른 지점을 향한다. 폭력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딸의 미래를 위해 가난과 불행에 맞서 싸우는 한 여성의 고군분투임을 말이다.

가사 도우미로서 마주한 수많은 이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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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의 투쟁은 가정부로 일할 때 도드라진다.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갖고 있는 글솜씨를 발휘할 순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맨발의 빌리 집’, ‘포르노 집’, ‘나쁜 년 집’ 등 독특한 제목으로 눈길을 끈 뒤, 알렉스는 고객으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일을 하며 느낀 감정들을 글로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완벽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고객부터 각방을 쓰며 각자의 삶에 집중하는 쇼윈도 부부, 병든 할머니를 간호하는 할아버지까지, 알렉스는 이들을 보며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여러 사연을 가진 고객을 만나면서 알렉스는 현실적인 이유로 접어두었던 꿈과 재능을 조금씩 발견하며, 아주 작은 희망을 품기도 한다. 시청자 또한 그의 삶과 글에 빠져들어 알렉스가 이 끔찍한 현실을 벗어나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실제 이야기에서 시작된 아주 작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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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조용한 희망]은 제목과 달리 희망적이지 않은 순간들이 계속되지만 알렉스의 절실한 마음처럼 한 번 더 세상과 사람을 믿고 싶게 이끌어준다. 사회의 외면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일궈낸 한 여인의 이야기가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알렉스는 진심을 다해 사람들과 마주하고, 힘든 환경에서도 딸과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제목 그대로 ‘조용한 희망’을 의미한다. 또한 알렉스의 투쟁을 통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빈곤 계층의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적인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덧붙여, DCEU의 ‘할리 퀸’으로 유명한 배우이자, 다양한 여성의 삶을 연기해온 마고 로비가 제작에 참여해 작품이 전하려는 진정성에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