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은빛유니콘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로 큰 감동을 전달한 애플TV+ [파친코]는 시청자와 전문가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작품의 높은 관심과 인기덕분에 애플TV+의 존재감을 널리 알리는 홍보 역할도 해냈다. 사실 애플TV+에서 [파친코] 같은 명작 드라마가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에 비해 화제성이 낮았고,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에 신작 공개에 차질이 있었을 뿐, 애플TV+는 [더 모닝쇼], [테드 래소] 등 구독자와 평단을 사로잡은 수준 높은 해외 시리즈들이 늘 있어왔다. 올해부터는 유명 배우들이 출연할 기대작을 준비해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파친코] 덕분에 친근해진 애플TV+의 숨겨진 보물들을 소개할까 한다. 오직 애플TV+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웰메이드 시리즈를 만나보자.

애프터파티 (The Afterparty)

이미지: 애플tv+

코미디 드라마 [애프터파티]는 여러 장르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다. 고등학교 졸업 15년 후 동창회가 진행되고, 이날 저녁에 모인 친구 중 유명 연예인이 된 제이비어의 집에서 뒤풀이 파티가 또 열린다. 하지만 동창회 뒤풀이 파티에서 집주인 제이비어가 살해되는 상황이 발생, 현장에 있는 친구들이 살인 용의자가 되어 차례로 경찰 조사를 받는다. 이들은 자신의 관점에 따라 그날 밤 일을 설명하는데, 때에 따라선 로맨스, 액션, 스릴러, 뮤지컬 등으로 장르가 변한다. 살인범을 찾는 추리 드라마의 모습을 취하는 듯하지만, [애프터파티]가 코미디 장르인 것은 살인사건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각 인물의 관점과 이야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데이브 프랭코, 벤 슈와츠, 샘 리차드슨, 티파니 해디쉬, 이크 바린홀츠 등 코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가 출연해 확실하게 웃겨준다. 마치 [라쇼몽]처럼 같은 사건을 사람에 따라 여러 번 재구성하는 방식인데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진술자에 따라 달라지는 그날의 진실이 신선하게 그려진다.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애프터파티]는 시즌2 제작이 확정되었고, 켄 정을 비롯한 새로운 배우들이 출연할 예정이다.

콜 (Calls)

이미지: 애플tv+

동명 프랑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해외 시리즈 [콜]은 릴리 콜린스, 페드로 파스칼, 닉 조나스, 카렌 길런 등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작품 자체가 오디오 드라마로 제작되어 이들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TV+에서 가장 획기적인 시리즈인 [콜]은 전화 통화로만 이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배우의 연기를 하는 모습 대신 음성만 들을 수 있는데, 오히려 시각적인 상상력을 더 증폭시킨다. 이야기 내내 긴장감이 넘치며, 최소화된 비주얼 효과가 몰입감을 더한다. [콜]은 에피소드마다 각각 다른 이야기로 진행되어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세계관은 동일하기에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독특한 소재와 스토리, 연출까지 훌륭한 매력적인 시리즈로, 애플TV+에서 꼭 봐야 할 작품 중 하나이다. 비주얼 없는 드라마가 과연 재미있을까 궁금하신 분이라면 반드시 꼭 보시길, 아니 들으시길 바란다. 각 에피소드가 20분 남짓이라 청취하기도 큰 부담이 없을 듯하다.

세브란스:단절 (Severance)

이미지: 애플tv+

워라벨의 끝을 보여주는 드라마 [세브란스:단절]은 스킵 1순위인[?] 오프닝 장면까지 챙겨봐야 할 애플TV+의 파격적인 시리즈다. 주인공 마크가 다니는 회사는 뇌 단절 수술을 받아야 일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단절 수술을 받으면 직장 내 업무시간과 사생활의 철저한 구분이 가능하다. 즉, 퇴근 후 회사에서 일어난 일과 기억을 모두 잃고, 출근하고 나서는 밖에서의 기억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업무에 충실하던 마크는 집에서 자신의 전 직장동료라며 찾아온 피티를 만난 뒤 회사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여기에 새로 입사한 직장 동료 헬리가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탈출하려고 하자, 마크는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세브란스:단절]은 참신한 소재와 공상과학 장르에 어울리는 공간적 배경, 미스터리한 전개까지 계속해서 흥미를 자아내는 작품이다. 극중 단절 수술에 대한 윤리적인 논쟁이 등장하는데. 픽션 속에서도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만한 화두를 던지기도 한다. 배우 출신 감독 벤 스틸러가 연출을 맡은 [세브란드: 단절]은 다소 지루한 초반만 극복하면 인생작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트라잉 (Trying)

이미지: 애플tv+

영국 드라마 [트라잉]은 불임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니키와 제이슨 부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두 사람은 간절히 아이를 원하지만 번번이 임신에 실패하고, 의학적인 도움을 받아도 임신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의 마지막 희망은 입양.. 이때부터 두 사람은 입양을 할 수 있게 좋은 부모가 될 노력을 시작한다. 입양아 예비 부모 모임에도 참석하고, 헤어진 여자친구를 만나 조사 담당자에게 좋은 말을 해달라고 귀띔도 하며 자신들의 단점도 고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럴수록 과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불안감은 커진다. [트라잉]은 다소 민감한 소재인 입양을 그리지만, 오히려 자연스러운 이야기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낸 코미디 시리즈다. 주연 배우인 라스 스풀, 에스터 스미스의 능청스러운 모습과 대사들도 재미있다. 예비 부모의 시행착오가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전하며 작품에 푹 빠져들게 한다. [트라잉]은 2시즌까지 공개되었고 시즌3 제작도 확정되었다.

샤이닝 걸스 (Shining Girls)

이미지: 애플tv+

커비는 기자를 꿈꿨지만, 과거 끔찍한 일을 당한 뒤 트라우마에 시달려 꿈을 포기해야 했다. 신문사의 자료 기록실에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살인 사건 보도를 보고 자신이 당했던 수법과 비슷하다는 것을 눈치채며, 베테랑 기자 댄과 함께 연쇄살인범을 추적한다. [샤이닝 걸스]는 피해자와 기자가 팀을 이뤄 범인을 찾아내는 이야기 같지만, 실상은 그보다 더 복잡하다. 드라마 초반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보여주는데, 진짜 문제는 다음부터 시작된다. 범인이 다른 시간대에 같은 외모로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이 때문에 커비의 삶이 시시각각 변한다는 점이다. 커비는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일기장에 기록하며, 단순한 기억이 아닌 진짜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펼친다. [샤이닝 걸스]는 한순간에 자신이 기억하는 현실이 아닌 다른 시간을 마주한 커비와 범인에게 어떤 비밀이 있는지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무한히 변화되는 현재를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내어 흥미를 더하며, 복잡하지만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가 상당한 몰입감을 빚어낸다.